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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聖山, 마차푸차레 - Annapurna 4일째

2007.11.07 02:47

이승진 조회 수:629




                                              나는 히말라야에서 보았습니다

                                                   속도를 다투지 않는 길과
                                                   본성을 잃지 않는 영혼과
                                        문명의 비곗덩어리를 가볍게 뚫고 들어와
                                             내장까지 밝혀 주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만년 빙하를 이고 있어도
                                             결코 허공을 이기지 못하는 설산



                           △ 첩첩 계곡이 만나는 저 멀리에 안나푸르나 설산이 보인다.

                                                    

            ◑ 10월 20일, Anna 4일차 일정 ◐

                 뱀부 (2335m) -> 도반 (2505m) -> 히말라야 (2920m) -> 
                 데우랄리 (3230m) 중식 -> MBC (3700m) 도착        
                 트레킹 소요시간 8시간 예정




6시 기상.
식사를 마치고, 7시에 Bamboo 롯지를 떠났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밤사이 티끌 한 점 없이 하늘은 맑게 개었다.
계곡의 오른쪽에는 Machhapuchhre(6693m) 동쪽사면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늘 허공위로 솟은 모습만 우러러 보다가 '물고기 꼬리' 정상부를 확연히 볼 수 있으니
비로소 내가 히말라야의 깊숙한 곳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오늘 우리가 갈 지점, MBC(Machhapuchhre Base Camp).
이름처럼 베이스캠프를 두고 있긴 하지만 그 산을 누구도 오르진 못한다.
마차푸차레는 네팔인들이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서 정부의 등산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Dovan으로 향하는 아침 숲길은 아늑했다.
산이 높아선지 새소리도 멈춘 지 오래였고 짐승들의 기척도 아예 없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계곡 건너편을 잠시 조망한다.

숨을 깊숙이 들이키면 가슴속은 알싸했지만, 이마의 땀은 아직도 송글하다.
직벽에 가까운 산세가 부담스러운지 물줄기는 서너번은 방향을 틀며 떨어졌고,
그 소리에 히말라야는 늘 깨어 있다. 
폭포수를 보탠 Modi chola 강은 더욱 힘을 더하여 흘렀다.

8시 20분. 2505m의 Dovan에 도착하였다. 
롯지에서 배낭만 잠시 풀어 목만 축이고는 이내 출발하였다.




1시간 30분을 더 가서 Himalaya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2900m.
2744m의 백두산보다 높이 오르는 셈이기도 했지만,
고산병 증세가 서서히 나타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높이가 3000m만 되어도 공기중의 산소는 평지의 68% 밖에 되지 않는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올라가면서 몸이 고도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천천히 올라가더라도 두통 정도의 고산병 증세는 나타난다.
원래 어제 밤을 여기서 하루를 묵으면서 고산병에 적응하려 했었는데 그 스케쥴이 어긋났다.

우리는 따뜻한 오렌지티를 마시면서 좀 더 게으름을 피웠다.
이 곳은 첩첩으로 산이 높기도 했고, 계곡 또한 덩달아 깊었다. 
그 한가운데를 차지한 롯지였지만 구름이 일고 스러지는 산의 모습은 심심하지 않다. 
올려다 보이는 산쪽으로 포터들을 먼저 보냈다.
마지막 고비인 Deurali (3230m)로 가는 길이다.















    






                       









안개가 걷히면서 네팔어로 '고개'를 의미하는 데우랄리가 보였다.
곧이어 Hiunchuli(6441m) 산으로 오르는 길목격인 Hinku cave가 있다.
여기서 왼쪽 계곡으로 방향을 잡으면 Hiunchuli의 왼쪽편에서 정상을 향하는 루트가 있다한다.
동굴은 날씨가 불순할 때는 대피소로도 충분할만큼 넓고도 깊었다.
거대한 입속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여 이 곳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거슬러 지나온 길의 강물은 큰 바위를 돌아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다.












크고 작은 돌을 맞대어 가며 모자이크 한 예쁜 계단을 밟고 올라 Shangri-La에 도착했다.
'샹그리라'는 티벳어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다.
그런 의미인지 'Anna'와는 등을 지고 있고, 'Machha'는 앞산의 높이에 시야를 가린다.
설산들은 이곳에서 보이지 않았고, 마음속에만 두고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다.
산님의 마음을 아는지 깃대위의 오색 룽다도 북풍을 타고 설산쪽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마당이 정갈하고 넓었고 간이 테이블도 몇 세트 놓여 있었지만, 실내로 바로 들어섰다. 
유럽인들이 지도를 펴고 얘기를 나누는 한쪽으로 배낭을 풀며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밀크티를 마셨는데, 어렸을 적 가루우유를 풀어 마셨던 추억의 맛이 떠올랐다.
창밖에는 쿡팀이 식기를 챙기느라 분주했다.

메모장을 꺼내 지나온 일정을 체크하는 사이에 점심으로 라면이 나왔다.









                         


남은 일정에 비해 시간 여유가 많았고, 고산병이 우려되는 곳으로 굳이 서둘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어 
무석이와 나는 제일 후미를 차지하고 데우랄리를 떠났다.
오후로 접어든데다 고도가 높아선지 MBC를 향하는 길은 안개에 자주 갇혔다.
평탄한 길이었지만 한 발씩 천천히 옮겼고, 자주 복식호흡을 하면서 고소증에 대비했다.











Hiunchuli에서 흘러내리는 石間水가 흐르는 길목에 용비늘같은 차림을 한 거대한 만년설을 만났다.
큰 파도처럼 집어삼킬 듯 솟구쳐서 위험해 보였으나 점잖게 세월의 무게를 다잡고 있다.
3500m를 넘어서면서 길은 평탄해졌다.
이제 수목한계선을 넘었는지 나무는 점차 보이지 않았다.
무릎키를 넘지않는 풀은 점차 샛노래져 갔고, 하얀 홀씨를 이고 있다가 바람결에 풀어헤친다.
거대한 히말라야의 캔버스는 단색의 계절을 향하고 있었다.












저만치에 MBC가 보인다.
히말라야 산맥 안나푸르나의 남동쪽 코밑까지 올라온 셈이다. 
















왼쪽이 이번 트레킹을 이끈 나관주 대장이다.
세계적인 산악인인 한완용, 엄홍길, 박영석과 함께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고락을 함께 나누었고,
8000m 이상의 고봉 7개를 등정한 산악인이며, 오지로 투어 대표를 맡고 있다.




             △ 이번 24명의 참가자중에서 가장 어린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22살의 학생.




오래전 어떤 박수무당이 말했다.
"우리 같은 무당이나 중 될 팔자가 있네요. 중 됐으면 명줄걸고 용맹정진, 큰 깨달음을 얻었을 거요."
나는 그이의 말에 크게 웃었다.
저잣거리의 폭발하는 욕망을 다 버리고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늙어서도 영원한 현역작가로 남고 싶은 나의 꿈도 물론 거기에 합치됐다.
그러나, 요즘은 자주 그이의 말이 내 영혼에 들어와 심지로 박혀 있는 걸 본다.
내가 그리는 것들의 태반은 저잣거리에 있지않다.
요컨데 삶은 유한하고 내가 그리는 불멸의 사랑은 대부분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그 단층은 날이 갈수록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자주 울었고 자주 술에 취했고 또 자주 길을 떠났다.
천지를 흐르다 보면 내 자신이 허공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유랑은 그렇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카일라스 역시 하나의 과정이었다.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카일라스는 밤낮 없이 내게 묻는다.
그것은 시작이고 끝이고 물음표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카일라스가 그렇게 들어가 박혔으면 좋겠다.
당신과 함께 떠나고 싶다.
떠도는 길에서 동행자를 만나는 건 신이 주신 행운 아니겠는가.

                                                                   2007년 10월 박 범 신
 - '카일라스 가는 길' 책, 작가의 말 에서 -



박선생님과의 대화속에 히말라야의 밤은 깊어갔다.
식당을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
비 그친 뒤를 이어 눈이 내리고 있다. 
히말라야에 내리는 첫 눈이다.

눈이 내려 언뜻 포근해 보였지만, 방안 기온은 5도로 뚝 떨어졌다.
대장으로부터 고소증세를 방지하기 위해 머리를 감는 것은 물론이고
세수도 가능하면 삼가라는 지시가 있었다.
체온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처음으로 고소내의를 입었고 털모자까지 썼다.
저녁때부터 끓인 물을 담은 날진통을 침낭 속에 두어선지 번데기같은 그 속은 따뜻했다.
어쩌면 나도 내일 안나푸르나에서 젖은 날개를 펴서 날 수 있으리라.
ABC에서의 일출시간을 맞추기 위해 내일은 세시에 일어나야 한다.
나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날진통을 왼발과 오른발로 번갈아가며 한참을 toss하며 잠을 청했으나,
끝내는 헤드랜턴을 켜고 '카일라스 가는 길'을 펴서 제법 읽었다.

소복소복 쌓인 눈길에 발자국을 찍으며 뒷간을 찾았고, 
가득찬 내장 속을 비우고서야 새우잠을 잤다.

눈 붙일 시간이 따지고 보면 세 시간도 채 남질 않았고,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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