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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Annapurna를 향한 첫걸음 - 1일째

2007.10.30 11:13

이승진 조회 수:612




내 책상 위에는 액자 하나가 꿈으로 걸려있다.

왼쪽 DHAULAGIRI (8167m)부터 ANNAPURNA 연봉으로 맥을 이어가다
LAMJUNG HIMAL (6905m)까지 이어지는 히말라야 파노라마 사진이다.
작년 이맘 때쯤,
박종규 악우회장이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마치고 온 뒤, 
함께 떠나지 못한 나의 마음을 달래어 줄 요량으로 준 셈이었다.

길어지는 여름에 내가 지쳐갈 때쯤
아웃도어 브랜드 'MILLET'로부터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청년작가 박범신과 함께 떠나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참가자 모집"

갑자기 눈이 번쩍!

  
이렇게 시작된
'안나푸르나를 향한 꿈'의 여정이 마침내 오늘 실현되는 순간이다.


◑ 10월 18일, 제 1일차 일정 ◐

    07 : 50    인천공항 B카운터 앞 원정대 집결
    09 : 50    출국 수속후 KE695편으로 네팔 카트만두 향발
    13 : 15    카트만두 도착 (현지시간)
    15 : 00~ 국내선 항공 이용 포카라 도착,
                 차량이용 담푸스로 이동
    

어젯밤, 12시를 넘긴 서부모임 늦은 귀가에도 불구하고, 
5시 30분에 맞춰둔 알람에 정확히 일어났다.

마눌님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행 7시 비행기에 탑승.

8시 20분, 전체 23명의 트레킹팀과 합류.

출국 수속후 10시에 인천공항 이륙 




대한항공 직항이 1주일에 한번 왕복운항하는 탓인지 좌석은 만석이다.
그래도 방콕을 경유하는 노선을 불편하게 이용하다가
인천~카트만두 직항이 생겨 히말라야를 찾는 우리나라 트렉커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6시간 30분의 장시간 비행끝에 카트만두의 트리뷰반 공항에 내렸다.
현지시간 13시 20분이며,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3시간 15분이다.
내리자마자 우선 겉옷부터 벗었다.
한낮 기온은 20도를 웃도는 정도인데, 카트만두가 분지인데다 활주로 열기탓인지 후텁지근하다.



                           △ 사진 가운데 모자쓴 이가 박범신 선생이다.

카고백을 비롯한 짐을 찾는데 무려 2시간의 시간을 아깝게 흘려버리고 난 뒤에야
우리는 공항청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네팔의 열악한 시스템과 제반 여건미비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우리 일행을 환영나온 Nepali가 걸어주는 노란 금잔화 꽃다발을 목에 걸고
코로 밀려드는 진한 꽃향에 기분좋아진 무석이와 나는 국내선항공을 이용하려 이동하였다. 







카트만두의 국내선 공항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지만 짐때문에 버스로 이동하였다.
지극히 형식적인(?) 보안검색을 마치고 들어선 대합실은 우리나라 시골역 풍경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는 고산을 비롯한 네팔 주요도시를 왕복하는 국내선 항공사가 여럿 있었는데,
Pokhara로 떠날 우리가 탈 비행기는 "Yeti Airlines" 소속이다.  
여기서 Yeti(예티)라 함은 히말라야에서 사는 '전설속의 雪人'을 말하는 것이다.
Yeti 항공사의 심볼에 있는 발자국은 雪人의 것인 셈이다.

'Yeti'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다.
4000m에 위치한 '팡보체 꼼파'에 예티의 두개골과 손뼈가 있었는데,
1991년에 도난 당했다가 일본인의 수중에 넘어가 비행기에 실렸는데
이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그것들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예티를 직접 보았다는 사람은 많아도 아직까지 실물을 찍은 사진이 없어
여전히 그 존재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현재시간 5시 5분.
맥없는 시간이 제법 흘렀다.
포카라행 티켓은 사두었지만, 희안하게도
포카라를 향하는 출발 시간은 마땅히 정해져 있지도 않다.
'Ser. No.?' 만 표시해 두고는
타고 갈 비행기가 오고, 타고 갈 인원이 차면 그제서야 출발하는 식이다.

대합실 한 구석에서 기다린지도 벌써 두시간이 되어간다.

박범신 선생의 신간, '카일라스 가는 길'도 읽다가, 때론
안나푸르나 산군을 표시한 지도를 펴고는 우리가 갈 길을 익혀두기에도 힘에 부칠 쯤.
우리가 탈 비행기가 막 도착했으며, 급유를 마치고 나면 곧 출발할 것이란다.






우리 스물넷 일행외에 몇 사람 더 탄 정도이니
통로를 사이에 두고 1열과 2열로 배치된 걸로 봐서
약 30명 정도가 탑승하는 소형 프로펠라 경비행기쯤 되나보다.
드디어, 굉음을 울리면서 프로펠라는 돌아가고
활주로를 달린지 오래지 않아 카트만두 시가지가 발 아래로 보였다.






운좋게도 비행기의 오른쪽으로 앉은 나는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고도를 높이자,
몇 개의 구름을 건너뛰면 내 눈높이에 설산의 연봉들이 섬으로 떠있다.
카트만두에서 북서방향으로 포카라를 향해 날다 보니 
히말라야 산맥들이 오른쪽 창밖으로 줄곧 보이는 셈.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고 타는 순서대로 앉으니 참고하시길)

포카라까지 비행시간은 30분 정도.
 






스튜어디스가 두 손을 모두어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한다.
건네는 사탕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히말라야의 연봉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비로소 안나푸르나에 가까이 온 것이 한층 실감날 때 쯤.
차츰 눈에 익어가던 풍경들이 시야에서 벗어나 흐릿해져 갔다.
아마도 해가 어둑해져서 그렇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내 통역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 '청천벽력'

"포카라공항의 활주로가 조종사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착륙하지 못하고,
비행기는 기수를 돌려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10분 정도만 일찍 왔다면 착륙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덧붙인다.

"아니, 공항 시설이 아무리 열악해도 그렇지! 유도등 하나 제대로 없단 말인가?"
"......."
참으로 "네팔스럽네"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다시 짐 찾고......
온 종일 기다림에 지친 몸을 버스에 싣고
시내에 위치한 '빌라 에베레스트'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빌라 에베레스트'에 관해 살을 붙이면 이렇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게스트하우스 겸 한국식당 ‘빌라 에베레스트’를 운영하는 앙도르지 씨는
국내 산악인들의 절친한 벗이다.
네팔의 ‘한국통’으로 한국 산악인과 교류한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앙도르지 씨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네팔의 공사장 밥집에서였다.
한국 기업이 발전소를 짓는 공사현장에서 식당 일을 돕다가 한국의 친구가 된 것.
한국 음식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고, 한국말도 다른 네팔인보다 먼저 배웠다.
결국 공사장 밥집의 한식 요리사가 됐다.

1983년 오인환 씨가 이끈 트래킹 팀의 요리사로 솜씨를 발휘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양정고 졸업생으로 구성된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주방장으로 참여했다.
이후 10명의 등정자를 낸 1988년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의 식사를 책임졌고,
전봉곤 씨의 눕체 북서봉 등정 때도 베이스캠프에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2005년 촐라체 북벽 등정 후,
하산 길에서 사선을 넘나든 한국 산악인들의 구조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도 그였다.
앙도르지 씨는 20년 넘게 한국 원정대와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것이다.(동아일보 뉴스) 

어쩔 수 없이
나도 네팔식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
'Royal SINGI HOTEL'에서 무석이와 함께
예정에도 없던 카트만두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그래도 내일이면 '안나푸르나 산자락을 걷고 있을 나'를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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