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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바람의 말, 룽다 - Annapurna 3일째

2007.11.03 13:10

이승진 조회 수:608




                                       우리는 여행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風馬 펄럭이는 바람결따라 새들도 떠나는 중이다.

             저 빛나는 雪山에 머물러 쉬던 구름도 흘러가고, 또 스러질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들은 떠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 10월 20일, Anna 3일차 일정 ◐

                 지누단다 (1780m) -> 촘롱 (2170m) -> 틸체 -> 시누와 (2340m) 중식 
                 -> 뱀부 (2335m) -> 도반 (2505m) -> 히말라야 (2920m)         
                 트레킹 소요시간 8시간 예정














늦게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낭에서 몸을 꺼집어 낸 시간은 5시 50분.
기온은 12도. 날씨는 맑았다.
한꺼풀씩 어둠을 걷어내면서 산자락도 깨어나고 있다.
마당으로 나서니 룽따(風馬)가 펄럭이는 깃대위로 거대한 산그림자가 있고,
그 그림자위에 안나푸르나 남봉(7219m)이 햇빛을 막 받아서 반짝이기 시작하던 참이다.
자연이 내게 선사하는 거대한 보석이었으며 장관이었다..
저런 장면을 두고 다들 '서광이 비친다'고 할 터였다.

좀 더 멀찌감치에서 감상하려 무석이와 함께 뒷마당으로 옮겨갔다.
남봉과 어깨동무를 한 Hiunchuli(6441m)와도 첫대면을 했으며,
그곳에서 다양한 각도의 앵글을 잡아가며 30분을 더 보냈다.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는 우리와는 달리, 식사 준비에 한창인 쿡팀은 모두 무관심하다. 
무심한 그들이 마련한 아침 식사였지만 계란찜까지 내어준 아침상은 훌륭했다.
오늘 산행에서 마실 물로 숭늉을 날진통에 가득 채웠다.













히말라야의 첫 밤을 제공했던 '나마스테 롯지'를 떠나면서 찰칵!!!
우리보다 앞서 카고백을 먼저 보냈다.
시작부터 고도를 바짝 올리는 경사길이 이어진다. 
햇살에 출렁이는 꽃밭(아마도 종자油를 얻는 꽃이지 싶다)을 갈 지(之)자로 한참을 걸어 오른다.
오늘 산행은 짱!  트레킹의 진정한 맛이 이런 것일까?
 
깊은 계곡 건너편, 
시나브로 옅어지는 산의 끝에 구름을 벗한 마차푸차레(6993m)가 우뚝 솟아있다.
어제 해거름 구름속에서 붉게 반짝이던 모습과는 달리 가까워진 만큼 친밀감은 더했으나,
경외감에 신비롭기는 어제와 매한가지다.
촘롱마을 꼭대기까지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 산중턱에 돌출된 끝, 마당 넓은 롯지가 우리가 묵었던 곳이다.











                       
                                △ 허공에 걸어둔 서너개의 계단이 예술이다.




여기서 우리 트레킹 팀과 함께 했던 포터에 대해 언급하면,
이들의 일당은 500루피(Rs)이며, 1$=약 62Rs 이니 8$(약 7500원)에 해당한다.
함께 하는 트레킹 기간이 6일정도이니 1인당 45,000원을 부담하는 셈이다.
(그러나, 네팔의 실질적인 화폐가치로 따지면 10배정도의 가치라 함.)

포터를 모으고 짐을 배분하는 대장역인 나이케, '벰바'가 짊어지고 갈 카고백을 두고
일일이 손대중으로 들어보고는 그 날의 짐을 포터에게 배분한다.
일반적으로 카고백 하나 무게가 25kg 정도이니 2개씩에다 자신의 가방과 함께 지면
대개 50kg을 넘어서는 편이다.
그들의 신발은 한결같이 슬리퍼다.
내가 보기엔 걸으면서 슬리퍼에 더 신경쓰일 판국인데, 무거운 짐까지 생각하면 내공이 상당하다.
게다가 촘롱마을을 지나는 길에서 만난 슬리퍼 한켤레를 본 후로는 가슴이 '싸아~'아렸고,
좀더 짐을 줄여오지 못한 나 자신에게 질책과 반성을 줄곧 하였다.
 
쿡팀은 별도로 운영되는데,
1일 3식에 해당하는 쌀과 부식, 식기와 gas등을 모두 지고 다닌다.
다음 식사를 할 롯지에 먼저 도착해서 식사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신속한 이동을 위해 포터들 보다는 짊이 가벼운 편이고,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로 운반한다.
포터들이 개별적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반면, 쿡팀은 트레킹팀의 식사를 같이 한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현지 분위기에 따르면,
"이들의 식사비도 트레커들 부담으로 운영되어야한다"는 여론이 차츰 조성되고 있다.



△ 운반해야 할 짐도 없다보니 홀가분해서일까?  한 Nepali가 달콤한 오수를 즐기고 있다.





















                      





ABC(Annapurna Base Camp)를 가는 길에서 히말라야산군 전망이 뛰어난 곳이 촘롱마을이다.
100여호는 되어보일 정도로 마을의 규모도 꽤 크고, 롯지에서 만들어내는 음식 솜씨도 출중하단다.
유럽의 트레커들은 따사로운 햇빛아래에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독서로 하루종일 보낸다.
마음 내키는 더러는 한 곳에서 며칠씩 묵기도 한다.
우리들이 ABC에 들렀다 내려오는 4일차에 어느 롯지에서 유럽에서 온 부부트레커를 만났다. 
그들은 포카라를 떠난 지 14일째이며, 여전히 'ABC'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들과 비교하면 우리들의 일정은 트레킹이 아니라, 오직 전투산행(?)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어쩌겠는가?
우리는 씩씩한 대한의 아들! 경고 건아가 아니던가!
점심 예정지인 sinuwa로 가기 위해 한 걸음씩 뚜벅뚜벅 내딛는다.
게다가 chhomrong khola강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기 위해 고도는 1600m까지 떨어진다.
다시 올라야만 하는 쉽지않은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에는 어김없이 '룽다'로 불리는 바람의 말, 風馬가 나부낀다.
'옴마니 밧메 훔' 같은 경문이 적힌 오색천을 만국기처럼 긴 줄에 매단 '타루쵸'와 함께 펄럭인다.
파란색은 하늘, 노란색은 땅, 빨간색은 불, 하얀색은 구름, 그리고 초록색은 물을 상징한다.
만물의 근원인 地水火風을 담고 있다.
바람에 룽따가 펄럭일 때, 세상의 진리는 바람에 실려 곳곳으로 퍼져서 중생들을 깨우치고,
결국엔 해탈에 도달케 하는 히말라야인의 염원을 담은 셈이다.
지금도 그 곳에선 말갈퀴가 휘날리듯 바람의 말, 룽다는 펄럭이고 있을 것이다. 
















                            △ 강폭이 10여m 정도로 좁아진 촘롱강에 놓인 다리




 △ sinuwa에서. 계단식의 밭을 중심으로 발달한 촘롱 마을위로 우리가 지난온 길이 아스라하다.





12시 20분, Sinuwa에 도착했다.
롯지에서 준비한 데운 포도쥬스로 목을 축이며 한쪽 테이블을 차지하곤 휴식모드다.
어제의 무리한 일정탓인지 후미가 늦게 도착하였다.
점심메뉴는 라면이다.
당연히 말아먹는 밥이 세트로 나왔지만 나는 사양했다.
'마의 벽'을 깨기 위하여.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2시에야 Sinuwa(2340m)를 떠나 Bamboo(2190m)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또 비를 만났다.
높은 산, 깊은 물이 또 안개를 불렀으며, 그것들은 비가 되어 대지를 적셨다.
트레킹 오후마다 이런 일을 자주 겪었다.
접이식 우산은 트레커들에게 필수품이다.













안개에 갇혀 조망을 잃은 탓인지 걷는데만 열중했고,
선두조를 이끌었던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Bamboo롯지에 도착했다.
15시 30분.
쉬는 동안에 비는 우박으로 바뀌어 롯지의 양철 지붕위에서 통통 튄다.
오랫만에 듣는 우중주다.

고소적응을 할 겸 히말라야(2920m)에서 숙박을 하려던 계획이 수정되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Dovan (2505m)까지는 갈 수 있으나 거기엔 방이 없단다.
뒤처진 후미가 걱정이 되었고, 어제의 피로도 풀 겸 여기서 묵자는 나관주 대장의 지시에 따랐다.

여유가 생긴 밤 시간에 박범신 선생과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신간, '카일라스 가는 길'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고, 여덟차례에 걸친 히말라야 산행의 경험담을 들었다.
그 중에서 한마디.
"함께 걷되 홀로 생각하고, 홀로 걷되 내 마음속에 침잠하라."는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내일은 여섯시 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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