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혹설> 7 - 마음, 그 21그램의 마법
2012.04.02 15:47
1. 여인 따라 가버린 마음
북경에 간 시골 선비... 번화가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장(盛裝)에 짙은 화장을 한 여인 하나가 지나가는데, 마, 정신이 아득했다.
내 마음, 붉은 화장 따라 가버리고 心逐紅粧去
껍데기만 남은 몸, 쓸쓸히 문에 기대어 섰네 身空獨倚門
여인이 살풋 웃었겠지. 이런 시로 화답했다.
짐이 무겁다고 나귀가 성질을 부리는데 驢嗔車載重
사람 하나가 더 타서 그랬나 보이 添却一人魂
대체 마음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가. 당나귀 허리를 휘게 만들 정도인 것은 틀림없는데... 그러고 보니,
스님들 화두로 옛날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이런 화두가 좋을 듯한데...가령,
1) ”여인 따라 간 마음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든지,
2) 대체 마음의 무게는 얼마이기에, 나귀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가? 가 좋지 아니한가.
- 참, 이 시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있다.
2. 얘는 대체 어디 갔담?
공자도 마음의 ‘향방’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맹자��에 실린 말씀 하나.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붙들면 있는데, 놓아버리면 그만 없다. 나훈아 노래처럼 ‘무시로(無時)’ 드나들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마음이 원래 그런 물건이겠지.”
성인께서도,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하는 '마음'에 상당히 곤혹스러우셨나 보다.
3. 마음, 또 집나간 난봉꾼
역시, 여인을 따라 가지 않더라도 마음은 늘 집을 나간다. 그런 점에서 떠도는 등짐장수나 바람난 여편네랑 닮았다. 대명천지, 대체 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맹자는 탄식한다.
“닭이나 개가 집을 나가면 밤새 온 동네를 뒤지더라만... 마음은 ‘분실’하고도 내 몰라라 하니, 어째 거꾸로 아니냐?”
孟子曰, “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弗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그 ‘마음’은 앞에서처럼 성장한 여인의 아련한 립스틱 냄새에 취해 갔을 수도 있고, 숭배와 권력, 그리고 화려한 집과 안일을 찾아 먼 길을 떠났을 수도 있다. 혹은 자유와 예술을 찾아, 홍대앞 인디밴드에서, 아니면 이장희처럼 데스밸리에서 벌거벗고 사막을 헤집고 있을 수도 있다.
맹자 가로되, “삶의 과제(學問)는 딴데 있지 않다. 바로 이것, 즉 ‘집 나간 마음을 찾아 오는 것’ 그것 하나이다.”
4. 비누방울 속의 얼굴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 하나던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어느 스님의 탑명에서 슬몃 장난기를 발동했다.
“지황 탕약을 짜서 걸러보니/ 거품은 솟아나고 방울은 부글부글/ 그 속에 내 얼굴이 수없이 찍혀 있네/ 거품마다 내가 있고/ 방울마다 내가 있네/ 큰 거품에는 내 모습도 커다랗다가/ 방울이 작아지니 내 모습도 줄어든다/ 방울 속에 내 눈동자가 있고/ 내 눈동자 속에 방울이 들어 있네/ 짐짓 얼굴을 찡그려보니/ 일제히 눈썹을 찌푸리고/ 어쩌니 싶어 웃었더니/ 다들 웃음을 터뜨리네/ 성난 체를 해 보았더니/ 다들 팔뚝을 걷어 부치고/ 잠자는 척을 했더니/ 모두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이 가운데 어느 얼굴이 너의 것인가. 중중 무진 출몰하는 마음,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너의 ‘마음’이냐.
“방울을 지그시 눌러도 보고/ 머리털로 콕 찔러도 보네/ 시간이 지나 그릇이 식고 차분해지자/ 향기도 사라지고 모습도 잦아들어/ 수백 수천의 내가/ 어디로 갔는지 자취가 없네.”
미하루 정사장님, 이 번잡한 사설들을 유행가 가사 하나로 정리했으니, 접장들은 다들 밥값 접어야되야...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승진 거사.. 여기서 노래 하나 올려 주면 좋은디.. 노래 올리는 것은 안 해 보았음.)
5. 꼬롬해진 마음을 펴야할텐데
보이지는 않지만, 있긴 있는 모양이다. 비누방울처럼 많지만, 그래도 그건 ‘하나’의 분지라고 우리는 생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하나’인 마음이, 나도 모르게 꼬여있다면? 펴야지, 암 펴야하고 말고...
맹자 또 한 말씀...
孟子曰, “今有無名之指屈而不信, 非疾痛害事也, 如有能信之者, 則不遠秦楚之路, 爲指之不若人也. 指不若人, 則知惡之, 心不若人, 則不知惡, 此之謂不知類也.”
“지금 말이야, 무명지(약손가락)이 꼬부라진 사람이 있다 쳐. 아픈 것도 아니고 일하는데 방해도 안되는데... 펴준다는 사람 있으면 미국 러시아 멀다 않고 간다지... ‘남들과 다른 게’ 쪽팔려서... 그런데 ‘마음’이 남같지 않은데도, 별로 쪽팔려 하지 않아. 이게 말이 돼?”
굽은 손가락이 일에 방해가 안 된다고? 역시 맹자는 노가다 해 본 적이 없나 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의 그 조르바, 자꾸 도끼질에 걸리적거린다고 이 손가락을 그냥 내리쳐서 잘라버렸지. 무슨 생선 대가리 짤라 없애드끼... 말이시..
그런데, 역시 자기 ‘마음’에 성형이나 정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손가락 펴고, 얼굴 고치러는 집 팔아서 가면서...
6. 마음을 성형해주는 클리닉은?
율곡도 ‘마음의 성형’을 강조한다. ��격몽요결�� 입지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人之容貌 不可變醜爲姸 膂力 不可變弱爲强 身體 不可變短爲長 此則已定之分 不可改也 惟有心志 則可以變愚爲智 變不肖爲賢 此則心之虛靈 不拘於稟受故也 莫美於智 莫貴於賢 何苦而不爲賢智 以虧損天所賦之本性乎 人存此志 堅固不退 則庶幾乎道矣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 수 없고, 약골을 헤라클레스로 바꾸어놓을 수 없다. 짧은 기럭지를 구두창 안 깐 다음에야, 길게 늘일 재주도 없다. 이것은 ‘정해진 운명(已定之分)’이 있는 것. 그러나 다만 ‘마음’만은 의지에 따라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덜떨어진 자(*不肖 -한 모의 자호)를 현자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은 즉, 이는 마음의 ‘비어있고, 또 신비한 능력(心之虛靈)’은 타고난 신체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 능력을 발휘하여 하늘이 부여해준 본래의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하실 것.”
율곡이 이 시대에 살았으면, 위의 문장이 아주 달라졌겠지... 가령,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물론, 성형을 통해 용모도 ��미녀는 괴로워��나, ��페이스 오프��의 존 트라볼타처럼 완전히 뜯어 고칠 수 있고, 약골은 약물과 헬스로 몸짱으로, 그리고 키도 성장판 자극이나 아니면 뼈 수술을 통해 크게 늘일 수 있듯이... 마음은 더욱 유연하기에, 얼마든지 변화와 성장에 열려 있다. 그렇지만 마음의 성형은 ‘외부의 강제’나 ‘부자연스런 장치’ 없이, 오직 네가 가진 자연의 잠재력을 성장시켜 나가는 일이라서, 아무 무리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이 훈련은 성형의 효과와 체력 단련, 그리고 몸의 건강을 아울러 갖고 온다.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으냐...”
기억하자. 마음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성장, 아니면 퇴보로 ‘움직이는’ 물건이다!
7. 그럼, 어떻게 이 ‘마음’을 훈련할까
프로그램은 차치하고, 우선 이 과제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맹자가 한 충고가 있다.
“왕이 무식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장이 빠른 초목이라 해도, 하루 햇빛에 열흘을 냉기로 얼리면 싹을 틔울 재간이 없습니다...
지금 이창호가 바둑을 가르친다고 합시다. 사소한 기량(? 바둑하시는 분들 화낼라) 이라 하나 ‘마음을 집중하고 관심을 지속하지(專心致志) 않으면 습득하기 힘듭니다. 한 사람은 이창호의 말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집중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날아가는 새 쳐다보며, 화살 날릴 생각만 하고 있으면, 같은 스승, 같은 가르침이라 해도, 훈련의 효과가 천양지차 아니겠습니까.“
孟子曰, “無或乎王之不智也. 雖有天下易生之物也, 一日暴之, 十日寒之, 未有能生者也. 吾見亦罕矣, 吾退而寒之者至矣, 吾如有萌焉何哉? 今夫奕之爲數, 小數也, 不專心致志, 則不得也. 奕秋, 通國之善奕者也. 使奕秋誨二人奕, 其一人專心致志, 惟奕秋之爲聽. 一人雖聽之, 一心以爲有鴻鵠將至, 思援弓繳而射之, 雖與之俱學, 弗若之矣. 爲是其智弗若與? 曰, 非然也.”
각설,
구체적 훈련 프로그램은 ��논어��를 위시한 사서삼경에 담겨 있다! 12세기 주자는 불교를 품에 안고 ‘새로운 유학(Neo-Confucinism)’의 체계를 새로 선보였으니, ��심경��이며 ��근사록��, ��주자서절요�� 등에 집약되어 있다. 또 조선의 경우, 훈련은 더욱 간명해진다. 퇴계의 ��성학십도��, 율곡의 ��격몽요결��, ��성합집요�� 등에 그들의 노하우를 남김없이 담아 놓았다. 누구 한번 이 ‘인간학’ 혹은 ‘인문’ 프로젝트에 뛰어들 자 없을까.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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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정
2012.04.0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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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진
2012.04.02 19:11
본방, 한박사의 '인문 프로젝트'에 감히 뛰어들자고 손들지는 못하겠고.
하지만 'step by step'으로다가, 하루 하루 햇빛을 모아가며 싹을 틔워 볼 생각은 있으니.
비록 성에 차지 않더라도 굽어 살피시길....
내게는 '論語 或設'이 아니라 '惑設'일세.
늘그막 마음 다잡는...
[p.s] '가시나무'라는 노래는 80년대 포크 뮤직으로 유명했던 하덕규와 함춘호로 이루어진 '시인과 촌장'의 명곡이다.
그 뒤, 조성모가 불렀었고, 최근 나가수에서는 자우림이 멋지게 편곡하여 불렀다.
한박사의 요청에,
어쩌면 마음을 다루는 글에 잔잔한 통기타 코드가 더 어울릴 듯하여 이번에는
우리와 엇비슷하게 낫살 잡숫고 계시는 '시인과 촌장'의 곡으로 이 DJ 올려볼까 한다.
노래 틀고, 한박사의 或設을 재차 음미하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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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정
2012.04.02 19:44
음(音)을 느리고 길게 끌고 나가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
마음 먹먹
마음 먹먹
혹설(惑說)로.. 두 칭구가..
비오는 날 주차한다고 뺑'이 친 本草 주차아저씨'를 울리네.
쎄트(Set)로.. 두 칭구가..
빗물인지
눔물인지 모리거따
인정아~ 우는 놈 말리능거 아이다. 더 눔물난데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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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열
2012.04.03 13:58
금일의 주제는 마음인것같은데...
춘삼월 호시절이라 여인따라 간 마음은 아마 봄바람에 날아갔다는느낌이 드는데..
여기에 바람의 무게는 집나간 마음을 찿아내는것이 맞을까싶네..
또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마음이 동가숙 서가숙 하면서 들떠있는
이럴때 마음을 성형시키고,훈련시키면 바람의 무게와 더불어 마음을 찿을껏같은데...
시리즈 잘보고있구만 !!1
이계절에 어울리는 어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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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남은 몸은 언제나 쓸쓸하고,
사람 마음 하나 더 무거운 짐에 언제나 나귀는 성질을 부리기 마련.
캬~ 기가 막히네.
늙었을까?
바람결에 날아온 일성호가(一聲胡茄) 같은 뽕짝 시(詩)에
별안간 눈물날 줄이야.
겨우내 지천에 보이던 언니들 레깅스.
역삼동도 강남이라
성급한 스무살 꽃청춘들이 새하얀 각선미 맨살을 뽐내데.
분냄새 아니라도
마음이 말콤한 종아리에 붙어 버렸어.
하이쿠~
헛나이 머것쓰~
쓸쓸하데.
ㅎㅎ
춤추던 조르바처럼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 맘속 최고의 배우 '안소니 퀸' 그가 그립네.
고마우이~ 친구~
마음 속이 접동'~접동'~ 울리고 있소.
바깥 봄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