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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밀린 일들이... 발목을 잡아, 뜸했으니, 통족!, 통촉. 


0.

오늘은 다산의 시 두 수를 보냅니다. 


1762년 생, 사도세자가 죽은 해에 태어난 준재... 정조가 처음 다산을 만나서 한 말이, "아, 그해 태어났더냐?" 였습니다. 총애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터... 


올해는 다산 탄신 250주년... 불초, 국제학술대회를 비롯해서, 몇 가지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이 그의 철학을 다룬 것이었는데, 그 후, 20년, 그가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한 "주자학"에 매달려 왔으니, 기이한 인연... 


1801년, 정조가 죽자, 카톨릭을 빌미로 한 피바람이 조선을 휩쓸어... 형 약종은 죽고, 약현은 흑산도로, 자신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다. 충주, 부모님 묘소에 참배하고, 나주 율정에서 갈라져, 형제는 울음을 삼키며 찢어졌지요. 그리고 e둘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편지는 아득히 오갔지만....


강진,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고, 슬슬 피하는 그곳에서, 주막 노파가 "불쌍해서..." 주는 밥을 먹고 살았습니다.   


1.  

그러고, 4년째... 어느날 처음으로 "웃으며" 쓴 시가 있다. 제목은 "홀로 웃다(獨笑)"이다.  


세상 돌아다 보니, 


  有粟無人食 곳간이 차도 먹을 사람이 없고

  多男必患飢 자식이 많아 좋겠다 싶으면, 흥부네처럼 배가 고프고

  達官必憃愚 고관이라 올려보면 멍청이가 따로 없고,

  才者無所施 실력이 있는 자는 어디 쓸 곳이 없지.


   역시나  


  家室少完福 온갖 복 갖춘 집은 드물고

  至道常陵遲 ‘최고’는 오래 가기 어려운 것. 


  翁嗇子每蕩 애비가 죽자살자 모으면 자식 놈이 펑펑 쓰고

  婦慧郞必癡 부인이 똑똑하면 남편은 꼭 이뭐병진 


  月滿頻値雲 보름달 뜨면 구름이 꼭 꼽사리 끼고

  花開風誤之 꽃이 필작시면 잊지 않고 바람이 불지¡


   物物盡如此 뭐 세상사, 만물이 다 그러한 것을¡

   獨笑無人知 남 몰래, 혼자 웃고 있다네


그, 스스로 회고에, 젊을 때, 혈기방강할 때는... '슬프고 처창한 시들'이 많았다네. 요즘 애들 노래처럼... 그러다가 '유배'를 떠나서는 '원망과 울분'이 격하게 터지는 것을 속으로 삼켰다 합니다. 그게...그러나 숨길 수 없는 것을... 이 시절의 시들이... 그렇다. 다산의 시들이... 한편 불의한 시절, 사람들의 위로이기는 하지만, 자못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유배 4년만에,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고, "갖추지 못한다"는 것을, 그 이치를 깨달은 듯하다. 경전에 쓰인 공자님 말씀과는 좀 다른 인생사의 통찰이라 할까. 


동기 제위, 우리 어렸을 적, 이발소에 걸려 있던 극채색의 싸구려 그림들이 기억날테지. 그 끝에 적혀 있던 워즈워드였던가의 ㅣ시가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어린 마음에, "삶이 사람도 아닌데, 속인다가 무슨 말이람!!" 하고 불평하던 것이 아득하네요. 


뜻대로 안될 때, 홀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 다산의 이 시를 가만히 읊조리며, 위안과 동지를 삼으시기 모쪼록, 바랍니다. 


2. 

봄공, 저번에... 자식의 가슴 앓이... "지나가듯" 적어준 적이 있었지... 무심을 가장했으되, 같이 앓던 아버지의 정을 읽을 수 있었지...  거기 적었으되, "연애하다 차였나 보던데... 옆에서 보고 있자니, 참, 딱하지 뭔가... 긍께 봄햇살에, 신록 눈부시던 나날이 그냥 지나가고 있었거덩..." 


이 구절에, 불초, 뜬금없이... 다산의 마지막 시가 떠올랐으니... 


다산...은 15세에 풍산 홍씨와 결혼해서, 한 갑자를 지냈어. 1836년, 2월 22일은... 결혼한지 한 갑자가 되던 해라.. "회혼" 혹은 "회근"이라고 하지.. 잔치 3일 전에 쓴 시가 있습니다.  


   六十風輪轉眼飜 육십 년 풍파가 눈 깜빡할 사이, 흘러갔는데, 

   濃桃春色似新婚 복사꽃 향기 가득한 이 봄, 자네에게 장가들던 그날같으이

   生離死別催人老 살아 이별하고, 죽어 떠나다 보니, 이리 늙고 말았지만

   戚短歡長感主恩 슬픔은 짧고, 환희는 길었던 건, 다 당신 은덕이네.

   此夜蘭詞聲更好 오늘밤 들려주는 목란 스토리 더욱 새로운데

   舊時霞墨猶痕 유배지에서 당신 치마에 그려준 먹흔 아직 그대로지?


      임자, 이 표주박, 


   剖而復合眞吾象 우릴 닮지 않았는감. 짜개졌다 다시 합친 것이¡

   留取雙瓢付子孫 잘 보관했다가 자손들에게 물려주소.

 

번역은 역시... 내가 해 보았습니다. 


다산... 남은 생은 이제 3일... 그는 지금 자신의 삶 전체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결혼한지 어느덧 한 갑자... 60년이 되었네... 지난 세월은 그저 눈깜박할 새 가버렸네... 그런데, 지금 저 신록...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처럼.... 복사꽃 진한 향기 날리고...있네.. 내 눈 앞에서... 우리 결혼할 때, 그 푸릇할 때, 그때처럼...말이시... 풍파도 많았지... 나이 40에... 내 지식과 경륜... 제대로 피워 보지 못하고, 숙청의 칼과 피바람에 쓸려... 죽어나간 형 약종, 친구 권철신, 이가환.... 그리고 살아 이별한 아내와 자식, 그리고 형 약전...을 떠올리면, 느꺼운 것이 가슴을 쳐... 그렇게 "살아 찢기고, 죽어 이별로(生離死別)"... 나는 늙어버렸다네... 그렇지만, 그럼에도 따져보니, 슬픔보다는 기쁨이 많고 길었네... 그게 다 든든히 집안 지켜준 당신 덕분이 아닌가... 고맙네... (*이 대목에서 다산은 아마도, 틀림없이 눈가에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옆에서 아내는... 다산을 위해... 이빨도 합죽하고, 눈도 침침한 그를 위해 <뮬란 스토리>를 읽어주고 있었나 보다... 그 소리 새삼 스럽고... 예전 유배시기에, 10년차, 1810년, 아내가 보내준 치마를 잘라, 거기 자식들의 훈계를 적어 준 적이 있었어... 아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걱정을 거기 담아 두었지... "그거 아직 있지? 그게 내 마음인 중, 당신은 알지?" 그러면서 다산은 표주박 한 쌍을 끌어당긴다. (*혹은 떠올리는지 모르겠다.) 그 표주박은 결혼씩때... 술잔을 나누는 것... 서로 짜개졌으되, 이제 합해서 잘 살라는 축원이 담긴 그 표주박... 다산은 그 "짜개짐"이 두 부부의 삶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18년간의 유배로, 생이별을 하고 가슴 졸이며  살았던 부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다만 그리움으로 지샌 시절들을... 다산은 아마도 3일 후의 죽음을 짐작했을 것이다. "임자, 이 표주박, 우리 인생을 닮지 않았나? 잘 보관했다가, 자손들에게 남겨주소...나는 먼저 갈 것같애..." 


다산은.. 이 시를 쓰고, 나서, "회혼날"... 잠깐 정신이 뚜렷했다가, 그날, 숨을 거둔다. 죽을 날을 골라 가는 선사들처럼...


동기 제위, 가운데 몇 사람...눈시울이 이미 붉어졌겠다... 


#

췌언, 사족 한 마디 


위 시 가운데... 


戚短歡長感主恩 슬픔은 짧고, 환희는 길었던 건, 다 당신 은덕이네. 


에서 "主恩"을 거의 대부분..."임금의 은혜에 감격했다"고 번역한다. 나는, 천만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아내에게 글을 쓰고 있는 중 아닌가." 主는 대체로 1) '임금' 아니면 2) '하느님'이다. 물론, 그는 '정조 임금'의 인연을 삶의 절정으로 쳤고, 그리고 늘 '하느님(天)'과의 대면을 의식하고 살았으되,  


그러나 지금은 '아내'이다. 틀림 없다!!   主... 그래서 3) '임자'라 하지 않는가. 워쩌케 생각하시남들... 오늘, 새삼, 아내 손을 잡아주고, 이 시를 "외워서..." 한번 들려주시도록... 혹, 떠난 분은 추억하고, 혹 헤어진 분은 회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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