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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지도자와 리더의 그릇

2008.08.26 09:16

김대식 조회 수:1992

여러 칭구들 다들 잘 계시제?
지긋 지긋하게 무덥더니, 결국 더위도 거의 끝나가는데...
올림픽도 끝나고나니 별로 신나는 소식도 이제 더 없고...
경제나 정치,온통 뒤숭숭한 분위기 가운데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있길레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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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와 리더의 그릇. 

그 그릇에는 국가이익과 포용이 들어 있어야 한다.

북군의 그란트(Grant)장군과 셔먼(Sherman) 장군은 1865년 봄 남부군의 수도 버지니나의 리치몬드(Richmond)를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그해 4월 2일, 남부군이 리치몬드를 포기하고 후퇴하자 그란트 장군은 퇴로를 차단하고 남부군을 포위한 후에 로버트 리 장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정중한 서신을 보냈다.

남부군의 리(Lee) 장군은 더 이상의 항전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장병들의 희생을 막고자 항복을 결심하였다.

1865년 4월 9일, 에포메톡스 군청 옆 농가에서 그란트 장군과 항복에 관한 회담을 가졌다.
남부군의 리 장군은 수려한 용모에 잿빛의 남부군 정장과 버지니아 군도를 차고 위용을 갖추고 참석했고, 반면에 그란트 장군은 꾸기 꾸기한 병사들의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란트 장군은 예를 갖추면서 옛날 같이 참전했던 맥시코 전투를 이야기 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였다.

그란트 장군이 항복 조건을 써내려 갔다. 항복조건은 매우 관대한 것이었으며 남부군이나 남부 주민들의 위상을 고려하고, 미국 전체의 화합을 위해 전쟁에 대한 책임이나 남부군의 전범 처리에 대한 어떠한 문구도 없었다.


항복문서의 요지 중에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이해와 용서를 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전 세계의 많은 전쟁 중에 지금까지 싸웠던 적을 배려하고 용서한 전례는 없을 것이다.
즉 “남부군의 장교와 병사들은 항복서명을 한 후 즉시 석방한다.
무기와 병기는 북군에게 인계한다. 장교는 허리에 찬 무기를 그대로 휴대해도 좋다. 말을 필요로 하는 장병은 지금가지 타고 다니던 말을 가져도 좋다.(먼 길을 가고 농사에 필요하기 때문임)”
 
패한 리 장군은 항복조건에 사의를 표하면서, 그란트 장군에게  부하들이 그 동안 너무 굶주렸음으로 식량을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란트 장군은 북군에게도 부족한 식량을 남군에게 2만 5천 명 분을 즉각 지원하였다.

리 장군은 항복 후에 애마를 타고 남군 진영으로 돌아가자 북군진영에서는 승리의 기쁨에 모자를 던지고 환호했다. 그리고 대포를 쏘며 밴드가 울려 퍼졌다. 패장에 대한 예우다.
그란트 장군은 “전쟁은 이제 끝났다. 남부군도 이제는 우리 국민이다.”라는 연설을 하고 모두를 포용했다.
남부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는 체포되지 않고 사면되었으며, 패장인 남부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대학의 총장으로 부임하였다. 전범의 수괴로 처벌되지 않았다. 미국의 미래를 위해 화해와 포용을 선택했다.

국가이익과 국가발전을 먼저 생각하고 결심한 그란트 장군과 링컨(Lincoln) 대통령의 판단이 오늘의 미국이라는 대국을 건설할 수 있는 기본 개념이자 정신이 되었다.


지도자의 그릇에는 먼저 국가이익과 국가발전이 들어 있어야 한다. 내부적 갈등과 마찰 그리고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는 이제는 접어야 한다. 국가이익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저력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도자와 리더의 그릇이 후손에게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준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조만간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지도자와 리더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조 흥래 박사의 “미국 역사” 중에서 재편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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