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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그림자를 밟으며...

2009.10.12 15:31

이승진 조회 수:308



△ 10월 10일 10시 10분경에
동아대에서 출발한 악우회원들과 함께 승학산 정상석에 나란히 섰습니다. 
(좌로부터  이승진, 정인화, 심재현, 박종규 악우회장)



△ 키가 멀대처럼 쭉쭉 뻗어서 하늘거려야 멋질 억새들이 올해는 작달막하게 자라 영 시들합니다.



△ 그래도 낙동강 하구를 배경으로 넘실대는 은빛물결은 여전히 눈부신 풍경입니다.



△ 가을이 깊어가는 승학산의 깔딱고개도 함께 넘고......



△ 꽃마을에서 시락국으로 요기를 때운 뒤, 2부 행군은 계속되고.....
엄광산 8부능선길을 넘으면서 바위에 올라
친구들과 함께 한 가을 사진도 한장 남겨봅니다.




△ 기별야구 예선경기가 열리는 경고운동장을 향해 막바지 내리막을 내려가며
5시간여의 가을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 어느덧 가을은 시나브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 추석연휴로 대간산행을 쉬는 바람에 한 달간의 공백이 생겨버렸습니다.
다음 주말로 다가온 대간길에 헤매는 불상사를 대비하여 경침과 함께 경주 남산을 올랐습니다.
용장골을 들머리로 하여 고위봉, 금오봉을 거쳐 삼불사에 이르는
6시간이 넘는 긴 코스였지만,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남산유적답사' 테마산행을 한 듯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  고위봉을 향해 암벽을 오르는 경침







△ 고위봉과 금오봉을 아우르는 경주 남산에서 가장 골짝이 깊고도 긴 용장골 너머로
황금빛으로 누렇게 익어가는 내남들판이 언뜻 보입니다.




△ 고위봉 산등성이 너머로는 오늘 대상산에 올랐던 신불산과 가지산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 산사나이, 경침이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낙동정맥의 큰줄기들을 두 눈에 오래도록 담아둡니다.




△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높이 오를수록, 더 넓은 세상살이들이 보입니다.



△ 신라의 융성했던 불국토였던 남산의 암릉은 참 아름답습니다.



△ 각양각색의 모양속에 남근바위도 보입니다.
설명을 더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영락없이 빼 닮았습니다.



△ 산행을 8시부터 일찌감치 해선지 일요일인데도 호젓한 '황제산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을 함께 찍어줄 객조차 없는 아쉬움속에
 대표로 경침이 고위산 정상석과 나란히 섰습니다.




△ 능선길에는 드문 하늘사이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그 속으로 우리는 담소를 나누면서 또 걸어갑니다.




△ 소나무 등걸을 타고 오르던 나뭇잎에도 가을은 익어갑니다.



△ 세상에서 익어가는 모든 것들은 예외없이 찬란하였고,
그 빛에 눈이 발갛게 부십니다. 
어김없는 세상의 이치에 사력을 다한 뒤안길에는
가벼워져 홀가분한 처연함도 설핏 묻어납니다. 




△ 볕이 있으면 그늘 또한 지듯이.
陽이 있는 곳엔 당연히 陰이 따르기 마련일까요?
산부인과 전문의 고박이 인증하였고, 한의를 다루는 봄공이 실험마저 끝냈다고
바위의 모양새를 따라 조목조목 경침은 설명을 더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리속으로 영락없는 음기바위가 떠오릅니다.
 친절하지 못한 관계로 더이상 세세한 설명은 하지 않으렵니다.



△ 화랑대쪽으로 면한 고찰, 칠불암을 내려다 봅니다.











△ 마애보살과 어우러진 그림이 참 평화롭습니다.



△ 그간 남산 산행은 열번 정도 되는 것 같은데도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가보질 못했습니다.
문화탐방에 걸맞게 경침과 나는 용장사지쪽으로 내려섭니다.
암릉을 기단으로 한 석탑은
천년의 세월 저편, 허공에 세워둔 듯 아득합니다.












△ 석탑이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점심을 풀어 놓았습니다.
경침이 지고 온 울산 대표막걸리, '태화루'도 산행의 풍미를 더합니다.



△ 삼층석탑 저쪽으로 태봉과 이무기 능선이 오르는 절정의 지점에 고위봉이 솟아 있습니다.
방금 우리가 올랐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셈입니다.




△ 어느듯 금오봉의 정상석에 다다랐습니다.
높이로는 고위봉에 조금 못미치지만
경주 남산의 얼굴마담인 봉우리입니다.




△ 상선암의 마애불상도 내려다 보이지만 자주 지나게되는 코스인지라
오늘은 지나쳐 '바둑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 '바둑바위'에서는 형산강 줄기를 따라 펼쳐진 경주시가지가 제일 잘 내려다 보입니다.
삼릉골과  가까이로는 경애왕이 견훤에게 최후를 맞은 곳인 포석정이 보이고, 
가운데 저 멀리 산자락엔 무열왕릉도 아스라히 보이고
 오른쪽에는 박혁거세를 비롯한 신라초기의 무덤인 오릉을 감싸고 있는 숲도 보입니다.




△ 무열왕릉을 똑딱이 카메라로 최대한 당겨 찍어보았습니다. 보이나요?



△ 오늘의 날머리 삼불사에 다다랐습니다.
이곳 지명을 붙여 '배리 삼존불'로 유명한 석불입니다.




△ 7세기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중앙의 본존불의 모습입니다.
석굴암과 동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물 63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 남산의 너럭바위에 드리워진 찍사의 그림자를 셀카로 찍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그림자밟기 놀이를 자주 했습니다. 술래를 정하고 그림자를 밟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놀이입니다. 술래에게 그림자를 밟히지 않기 위해 태양을 등지고 달리기도 하고 태양을 향해 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림자를 떼어내 어딘가에 감출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고양이나 강아지의 꼬리처럼 어떤 경우에도 우리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태양이 있는 동안 지상의 모든 사물은 그림자를 거느립니다. 태양을 볼 수 없는 날, 어둠이 내린 뒤에는 그림자를 볼 수 없습니다. 내 그림자보다 더 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도 그림자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런저런 특성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그림자는 왠지 모르게 슬픈 분신처럼 느껴졌습니다. 백주의 세상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어둠, 그것이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깊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림자는 왜 생길까.

어른이 되고 더 이상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지 않게 된 뒤에 비로소 깨칠 수 있었습니다. 태양빛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모든 것은 그림자를 갖는다는 사실. 빛을 차단하고 빛을 가로막기 때문에 그림자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요컨대 사물이나 인간의 경직성이 그림자 발생의 근원입니다. 구름도 그림자가 있고 물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공기에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공기의 흐름인 바람에도 그림자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분명하게 있지만 보이지도 않고 그림자도 없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볼 때마다 공기를 생각하고 바람을 생각합니다.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바람처럼 거침없고 유연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처럼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진종일 남의 그림자를 밟으며 살아갑니다. 남도 나의 그림자를 밟고 나도 남의 그림자를 밟습니다. 누가 술래인지 아닌지 분간도 할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림자를 밟히면 너무 안타까워했는데 이제는 날마다 남의 그림자를 밟으면서도 무감각하게 살아갑니다.

그림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합니다. 모두가 유연해지고 투명해져서 세상의 모든 빛을 다 통과사키고 스스로 빛나는 존재들을 상상합니다. 너와 나, 나와 남의 분간이 없는 온전한 빛의 세상은 그림자 세상의 이면입니다. 그렇게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바로 이곳의 반대쪽에 그곳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이르지 못하는 건 경직되고 경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수리 위에서 빛날 때 그림자도 가장 짧아집니다.

해질 무렵,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이 경직된 심신, 언제나 그림자가 스러져 공기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림자를 볼 때마다 빛에게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빛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존재의 경직성, ‘마음의 벽’이라는 말이 실체처럼 느껴져 그림자가 더욱 무겁게 보입니다.     - 박상우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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