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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추억의글

A Couple Journey (제4회 'Best Writings' 선정작)

2008.04.17 11:17

3태之妻 조회 수:879

유난히 뜨거운 날 大1 初6 저거들 혹(?)을 멀리한 채 남도로 향했다.

별로 분비지 않는 이른 아침 21년 만에 갖는 개 띠 끼리의 여행에는 `고승과 명찰` 책 한 권만 뒷좌석에 덩그라니 던저져 있었다. 가면서 읽으면서 그렇게 東家食 西家宿 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서.......
어느 덧 700여 리 떨어진 이곳에 첫 발을 디밀자 남도정식진상을 맛보고 싶었고, 하여 이리 저리 로타리 미로를 여러 번 돌아 겨우 `서정`이라는 곳에서 삼합(홍어+묵은 신 김치+돼지수육)을 대할 수 있었다.

내 고향에서도 찾을 수는 있는 음식이었지만 그런데로 시큼한 묵은 김치와 찌릿한 홍어 맛이 잘 어울렸고 미식가인 남편의 체면을 또한 살려 주는 듯해서 싸지 않은 청구서에 사인해 주었다.
든든한 뱃심으로 좀 더 남서로 달리다 보면 문득 작열하는 햇살을 받으며 다가오는 검고 푸른 바위산의 육중함에 놀라게된다.
월출산. 남도의 빼어난 자태에 매료되지 않는 자 누구일까.

코골이 까지 하는 남편을 차마 깨울 수 없어 훗날을 기약하고 두륜산으로 향한다.
국토의 최남단에 우뚝 선 마지막 명산 두륜산은 독경과 참선의 병행 수행을 주장하고 불교 유교 도교의 뿌리는 하나라는 삼교회통을 제시한 고승, 한국 불교사의 3대 인물인 서산대사의 유물과 유품이 봉안된 대둔사(대흥사)를 품에 안고 있다.
`너부내`라는 계곡을 타고 10리 숲길의 해묵은 노목(남편 왈 모두 수십년 묵은 동백)들과 삼림욕을 즐기다보면 일주문에 이르고, 13大宗師와 13大講師의 납골이 모셔진 부도밭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면 두 산봉오리가 함몰할 듯 성큼 다가오니 그 경이로움에 짧은 탄성을 올리지 않을 수 없음이 남편도 매 한가지였다.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두륜산의 와불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고, 이름 모를 불자에게 열심히 와불내력을 전수 하고자 애쓰는 노보살의 불심 탓에 일년치 공양거리를 올려놓았다.
입버릇처럼 하는 남편의 말, 고승대덕은 남도에 훨씬 더 많다는 이유를 말해 주 듯 산세가 무척 수려했으나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나타내지 않는 깨달음, 오늘날 송광사와 해인사와의 줄다리기(돈오돈수 돈오점수)에서 진정한 부처님의 말씀이 남도에 더 많이 抱卵되고 있는 것이다.
조금의 아쉬움을 남겨 두고 다시 남으로 땅 끝 마을로 향했다. 全南 海南 土末.

더 이상 나아갈 길은 없다.

북위 34도 17분 38초, 이제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

이 시대의 진보적 지식인 김지하 시인이 세상에 뜻을 잃고 왔었다가 땅 끝에 서서 한편의 시만 남겨놓고 돌아가지 않았던가. 나 또한 남겨둘 사진 한 장, 말 한 마디 , 돌 하나 쌓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물러나고 싶다.

몇 차례 해외 여행을 하면서도 늦게 서야 찾아온 미안함. 불혹 중반의 나이에 땅 끝에 서서 허전하고 스산한 마음을 달래려 팥 빙수 한 그릇 달랑 먹고 고구마 한 박스 사서 트렁크에 싣고 도망치듯 뒤로 뒤로... ...
해남- 강진- 장흥- 보성- 벌교- 순천 나름대로 특색 있는 고장들이다. 남편으로부터 돈 자랑과 주먹자랑은 이곳에서 하지 말라는 죠크도 있었다.
순천에서의 특미 버섯 탕은 적잖이 인상적이었다.

그윽한 육수에 총각 버섯(?)을 담은 전골 그릇을 볼짝 시면 식욕과 성욕이 함께 난다는 주인아줌마의 말이 맞아 떨어진다.
하여 두어 그릇 더 봉지 포장하고 여수 향일암으로 향했다.

늦은 밤이라 해도 이곳까지 와서 어찌 마다 하겠는가. 러브호텔이든 민박집이든 내달음 쳐보자.

두 다리 뻗을 곳 없으면 CAR-STAY도 해보자 꾸나.
허나 늦은 밤 여수 돌산도 금오산 향일암은 장난이 아니였다.

운전대 잡으며 투덜거리는 남편 옆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억누르다가 새벽1시쯤 겨우 민박집하나 찾았으나, 오만원에 만원 깎아주지 안는다고 우겨대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이리저리 다른 집(3만원짜리)으로 옮겨 보니 길가 방 선풍기 하나 추억으로 삼기에는 무척 빈곤한 일숙 이었다.

그러면 어때, 국토 제1의 해돋이를 보리라는 설레임을 안고 3시간 눈 붙였을까? 밖은 밝아지기 시작했고, 남편을 깨워 요구르트/바나나 봉지 들게 하고 향일암 관음전으로 향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꼬불꼬불한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우리 호흡도 함께 내 뱉아 30분 남짓 땀에 흠뻑 젖고 보니 대웅전에 다달은다.

 5시 35분, 저 멀리 수평선은 언뜻 보기에 내 고향 것과 별반 차이 없었으나, 정결한 해안선, 사람소리 적고 코끝이 동백 내음으로 무척 시원타는 기분만으로도 위안되어 또 다른 해돋이를 준비한다.

해가 들짝 시면 마치 독 같고 항아리 같은 것이 떠오르듯 하다는 말은 고문시간에 익히 들은 말, 그러나 이토록 이 나이에 아직 가슴 뛰는 그 시절의 감정이 있을까 하는 순간 독이든 항아리든 모두 한곳으로 沈沒 하니 원효대사께서 대중불교를 위해 이곳에서 정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삼대 관음 기도 도량 향일암 관음전은 그렇게 상반된 화두를 던져 주었다.

정성스런 합장 이었다 내심 위안하면서, 기약 할 수는 없으나 꼭 다시 오리라는 다짐과 함께 싫지 않는 갯 내음을 한껏 들이키고 이제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려가 본다.

2002년 8월2일 3태之妻 周 香山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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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홈캄잉 30주년때, 팬스타 크루즈에서의 손영태 가족사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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