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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추억의글

떨어져 있는 동기 산악회원의 산행보고

2008.04.04 23:58

정정남 조회 수:795

식구들이 여행을 떠난 바람에 집 지키고 있다가 바깥의 날씨가 좋은 듯 하여 문득 나서 볼까 마음을 내었다.
먹을 것과 마실 것 챙기고, 장갑과 손전등 챙기고, 고아텍스 상의 챙기고..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기 두 시간.
Marblemount라는 주유소에 도착, 개솔린을 넣었다.
주유소 주인이 한국 사람이기에 들어가 수인사 건네고, 맥주며 쏘시지며 좀 샀다.

지난 유월 중순쯤에도 여기를 왔지만 그땐 눈사태로 막혀 산다운 산을 오르지 못했다.
그때 길에 넘어져 있던 아름드리 나무며 눈이며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집을 나선 시간이 열한시, 길머리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두시였다.
들고 갈 것 없이 차 안에서 점심을 들고, 등산화로 갈아 신고, 채비를 점검하고, 왔다는 기념 사진을 찍고,
그리고 차 안에 Northwest Forest Pass라는 연간 입장권을 걸어두고, 그리고 오르기 시작했다.

이 산 Johannesburg산을 줄곧 옆으로 바라보며 오른 산길이었다.
지척의 거리에서 너무 높은 산이 치솟아 있다 보니 답답하달까 압도 당하는 느낌이랄까 시종 그런 느낌을 받았다.

길이 끝나는 중간 정도가 오늘 산행의 목적지로 삼은 Cascade Pass이다.
산은 높고 넓어도 길이 좋아서 슬리퍼 끌고라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수로 고생할까봐 잔뜩 물병을 넣어 왔지만 물은 도처에서 흐르고 있었고, 전망은 길을 걷는 내내 좋았고,
계곡으로부터는 눈더미를 지나바람이 불어 왔으므로 너무 시원했고, 다녀 본 산길 중에 이런 산길이 없었다.

사람들은 여기서 돌아 가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에 마주치는 사람들과는 '하이' 하거나 '헬로우' 하며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느라 지체하며 올라 그런지 시간이 이미 다섯시 반을 넘고 있었다.
아무도 더 산을 올라 오는 사람은 없었다.

평일에 산을 가면 팔자가 너무 좋은 사람일까.
남과 다른 일을 하는 만큼의 불안감은 늘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술꾼이던 버릇을 살려 애써 넣어온 맥주 한 깡통을 땄다.
이 재인지 고개는 정말 경관이 좋았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난 길이 나에게 나중에 다시 오라 손짓해 주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10초 자화상 사진을 찍고, 맥주 한 깡통을 비우고, 풍경 사진을 찍고,
그러다 보니 구름이 끼었는지 너무 추웠다. 가져 온 장갑을 끼고 고아텍스 상의를 꺼내 껴 입었다.

사슴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인지, 사슴이 많이 왔다 갔다 했다.
이렇게 세 놈이 동시에 나타난데다, 한 놈은 녹용 단 놈이었을 때는 뭔 일 생기는 건가 하고 긴장하기도 했다.
그 중 두 마리는 사진 가방에 흥미를 보였다.
이 놈처럼 곁눈질까지 해가며 눈독을 들이더니 그 중 한마리는 결국 코까지 대보고 갔다. 아름다운 짐승이었다.

6:30에 하산을 시작하여 7:45에 주차장에 닿았다.
그러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동차 시계는 8:30분이었다.
손목 시계가 느리게 간 탓이었다. 하마트면 야간 산행을 할 뻔 했다.

아무도 없는 산속의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달리고 고속도로를 두 시간 더 달려 집에 닿았다.


  Cascade Pass (el. 5392 ft.) is a mountain pass over the northern Cascade Range, east of Marblemount, Washington

남들은 영어유학이니 원정출산이니 하지만,
돌아가 애들은 유급시켜야 하는지, 영어가 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고, 내 영어는 제 자리고 그렇다.
원하는 대로 인생이 풀려 나가는 사람이 있기사 하겠지만,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해도, 오용이 소식이 마음에 걸리고 그렇다.

오용아~ 누가 그러던데 늘 건강하고, 또 돈을 존중하면 나중에 부자 된다 카더라.
그러니 건강에 늘 조심해라.
멀리서나마 응원할게.


               [ 2002년 8월 3일, 정정남 님의 미국 교환교수 시절, 산행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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