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제7회 'Best Writings' 선정작)
2008.05.14 13:59
내 술묵는 꼴 보기 싫으면 니 술 묵지마라.
니 술묵으먼 나도 술 묵는다.
그러니까 벌써 15년이나 전의 일인데...
이제 갓 시집을 온 친구마누라가
베리나인 골드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인사불성으로
누워있었다. (이러는 여자,더러 있더라)
내 친구,술이 확 깨더라나.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들고 나왔단다.
술 취해 혀 꼬부라진 마누라에게 식칼을 쥐어주고는
그어!
웃옷을 걷어 올리고는 배를 내밀면서
양같은 새색시에게 나 술 못먹으면 그날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그런 말 할려면 확 긋고 해라 했으니
새색시 술이 확 깼을터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 놈은 새장 안에 갇혀있을 놈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음인지 순순히 물러나더란다.
그렇게해서 15 년을
허구헌 날 술 취한 친구가
애를 셋씩이나 보고,
학문(한의학) 열심히 해서 박사도 되고
얼마 전에는 백두대간 종주도 끝냈다고 하니
같잖아서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판이다.
그 양같던 새색시가 이제는 중년의 아줌씨가
되었는데 그래도 아직 양같아서 불쌍하기도 하고
해서,나의 자비심이 발동되었다.
"데부꼬 산닥고 고생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갈라서소.
뒷 일은 내가 책임질텡게..."
'그러면 우리 헌 마누라하고 자식이 셋인데
그걸 어떻게 다 데리고 살거냐?'
친구는 내 걱정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지 새끼들 걱정을
하는 건지 술 취한 눈으로 묻는다.
아무래도 지 새끼놈들 걱정이었겠지.
그러면 지새끼 셋에 내새끼 둘
지 헌마누라,내 헌마누라,합이 일곱이라.
그기에 내 까지 하면 도합 여덟인데..
여덟명이 한 집에서,비좁은 우리집에서
복작대며 산닷 말인가?
헛,나의 뜻은 그런게 아닌데...
나의 원려를 알 턱이 있나.
지 새장가 가믄 또 술 묵을라고, 그러한 나의
심모원려를 무식한 놈이 어떻게 알겠는가,쯧쯧.
멀쩡하게 잘 사는 부부의 뒷일 까지도 걱정해주는
나는 너무 자비롭다.
역시 절간에 열심히 다닌 덕이다. 쿡.
[ 2002년 11월 22일, 박춘렬 님의 글입니다. ]
니 술묵으먼 나도 술 묵는다.
그러니까 벌써 15년이나 전의 일인데...
이제 갓 시집을 온 친구마누라가
베리나인 골드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인사불성으로
누워있었다. (이러는 여자,더러 있더라)
내 친구,술이 확 깨더라나.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들고 나왔단다.
술 취해 혀 꼬부라진 마누라에게 식칼을 쥐어주고는
그어!
웃옷을 걷어 올리고는 배를 내밀면서
양같은 새색시에게 나 술 못먹으면 그날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그런 말 할려면 확 긋고 해라 했으니
새색시 술이 확 깼을터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 놈은 새장 안에 갇혀있을 놈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음인지 순순히 물러나더란다.
그렇게해서 15 년을
허구헌 날 술 취한 친구가
애를 셋씩이나 보고,
학문(한의학) 열심히 해서 박사도 되고
얼마 전에는 백두대간 종주도 끝냈다고 하니
같잖아서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판이다.
그 양같던 새색시가 이제는 중년의 아줌씨가
되었는데 그래도 아직 양같아서 불쌍하기도 하고
해서,나의 자비심이 발동되었다.
"데부꼬 산닥고 고생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갈라서소.
뒷 일은 내가 책임질텡게..."
'그러면 우리 헌 마누라하고 자식이 셋인데
그걸 어떻게 다 데리고 살거냐?'
친구는 내 걱정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지 새끼들 걱정을
하는 건지 술 취한 눈으로 묻는다.
아무래도 지 새끼놈들 걱정이었겠지.
그러면 지새끼 셋에 내새끼 둘
지 헌마누라,내 헌마누라,합이 일곱이라.
그기에 내 까지 하면 도합 여덟인데..
여덟명이 한 집에서,비좁은 우리집에서
복작대며 산닷 말인가?
헛,나의 뜻은 그런게 아닌데...
나의 원려를 알 턱이 있나.
지 새장가 가믄 또 술 묵을라고, 그러한 나의
심모원려를 무식한 놈이 어떻게 알겠는가,쯧쯧.
멀쩡하게 잘 사는 부부의 뒷일 까지도 걱정해주는
나는 너무 자비롭다.
역시 절간에 열심히 다닌 덕이다. 쿡.
[ 2002년 11월 22일, 박춘렬 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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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의 '이달의 Best Writings' (제 7회)을
아래와 같이 각각 선정하여 발표하오니 다함께 축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수상작품
《제7회》
◇문 서 명: 자비
◇게시일자: 2002. 11. 22
◇작 성 자: 박춘렬
◇시 상 품: 문화상품권 2매
◆선정후기
제6회 '이달의 Best Writings' 발표 일정이 다소 늦어졌습니다.
이유인즉슨, 내심 복많은 우리 동기 양산박의 지속적인 행운도
빌어주고 또 가을낙엽처럼 사뿐, 사뿐히 내려앉는 경수 짝지님의
문장도 기릴겸해서 일찌감치 수상작을 내정해 두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고 있는 울산거사의
문장들이 앞을 가로막지 않겠습니까? 그 울산거사의 등장을 더 이상
미루었다간 자칫 '낙선전'이라도 열리지 않을까하는 험악한 분위기
마저 감지되는 상황이었지요.
해서 고민끝에 생각해 낸 방책이 두 분 동시 발표였습니다.
울산거사님이야 당연히 11월에도 좋은 글들 많이 올려 주실테고
따라서 11월 Best Writings로 선정해도 문제가 없겠다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는데, 실제로 울산거사님은 11월에도 많은 글들을
올려 주셨습니다. 이쯤되면, 시차를 두고 두 분을 동시에 선정하여
발표하겠다는 저의 잔머리도 꽤 쓸모가 있는 셈이지요?
◆작품평가
- 자비 -
춘렬공의 걸쭉한 입담이 잘 드러나 있는,
그야말로 프로급의 문장입니다.
글의 소재, 구성력, 상상의 얽개 등이 흠잡을데 없이
탄탄한데 특히, '멀쩡하게 잘 사는 부부의 뒷일 까지도
걱정해주는 나는 너무 자비롭다'라며 너스레를 떠는
종반부는 Houmor Essay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반전의 백미입니다.
덕분에 우리동기들 오래간만에
오염되지 않은 웃음 하나를 되살렸습니다.
실제로 춘렬공은 11월중에
'녹원정사 시리즈', '국방일기 연작', '개(犬) 글 모음',
'우리동네 이씨녀 옴니버스' 등의 생활수필를 올려 주셨으며,
그 밖에도 사회성 짙은 에세이 '레토릭과 진실',
서정성이 뚜어난 수상, '가을풍경', '억새소묘' 등의
수작들도 올려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수상작인 '자비'를
가장 감명깊게 읽었으며, 또한 작품의 완성도나 글의 향취도
동 수상작이 가장 높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두 분 수상자께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상품 송부처 주소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