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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추억의글

자비 (제7회 'Best Writings' 선정작)

2008.05.14 13:59

박춘렬 조회 수:548

내 술묵는 꼴 보기 싫으면 니 술 묵지마라.
니 술묵으먼 나도 술 묵는다.

그러니까 벌써 15년이나 전의 일인데...
이제 갓 시집을 온 친구마누라가
베리나인 골드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인사불성으로
누워있었다. (이러는 여자,더러 있더라)
내 친구,술이 확 깨더라나.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들고 나왔단다.
술 취해 혀 꼬부라진 마누라에게 식칼을 쥐어주고는
그어!
웃옷을 걷어 올리고는 배를 내밀면서
양같은 새색시에게 나 술 못먹으면 그날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그런 말 할려면 확 긋고 해라 했으니
새색시 술이 확 깼을터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 놈은 새장 안에 갇혀있을 놈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음인지 순순히 물러나더란다.
그렇게해서 15 년을
허구헌 날 술 취한 친구가
애를 셋씩이나 보고,
학문(한의학) 열심히 해서 박사도 되고
얼마 전에는 백두대간 종주도 끝냈다고 하니
같잖아서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판이다.

그 양같던 새색시가 이제는 중년의 아줌씨가
되었는데 그래도 아직 양같아서 불쌍하기도 하고
해서,나의 자비심이 발동되었다.
"데부꼬 산닥고 고생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갈라서소.
뒷 일은 내가 책임질텡게..."

'그러면 우리 헌 마누라하고 자식이 셋인데
그걸 어떻게 다 데리고 살거냐?'
친구는 내 걱정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지 새끼들 걱정을
하는 건지 술 취한 눈으로 묻는다.
아무래도 지 새끼놈들 걱정이었겠지.

그러면 지새끼 셋에 내새끼 둘
지 헌마누라,내 헌마누라,합이 일곱이라.
그기에 내 까지 하면 도합 여덟인데..
여덟명이 한 집에서,비좁은 우리집에서
복작대며 산닷 말인가?

헛,나의 뜻은 그런게 아닌데...
나의 원려를 알 턱이 있나.
지 새장가 가믄 또 술 묵을라고, 그러한 나의
심모원려를 무식한 놈이 어떻게 알겠는가,쯧쯧.

멀쩡하게 잘 사는 부부의 뒷일 까지도 걱정해주는
나는 너무 자비롭다.
역시 절간에 열심히 다닌 덕이다. 쿡.


                                                                                [ 2002년 11월 22일, 박춘렬 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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