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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안개비 속으로

2009.07.07 17:42

안중수 조회 수:236

북진 남진을 거듭하는 치열한 공방 끝에 강원권을 접수하고 마침내 경북/충청권을 공격하게 되었으며 이번 구간은 긴 거리이므로 다소 어려운 작전이 될 것이라 긴장하며 애마에 몸을 던져 출정한다.
어둠을 가르며 열씨미 달린 애마가 잠시 숨고르기를 위해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 용사들은 35회 김세정군이 준비한 비상식량인 정말 맛있는 호박죽을 먹으면서 전의를 다진다. 
작전지점인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 있는 농가앞에 도착한 용사들은 어둠속에서 신속하게 벤츠에 올라 원시림 사이로 난 작전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안개비가 내리고 있는 고치령에 도착하여 대장님의 오늘 작전에 대한 중요성과 주의사항을 듣고 장승과 그때 그시절 아픔 사연을 담은 산신각 사이의 숲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古峙嶺
국토지리원 자료에 古峙(옛 고개)로 기록 되어 있는 고치령을 양백지간(兩白之間) 또는 "고치재"로 부르기도 한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가로 지르는 고치령은 조선중엽 때까지만 하더라도 죽령 다음으로 중요한 고개였던 것으로 보이나 세조에 의해 유배당한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던 이곳 사람들의 노력이 발각되어 폐쇄되었다는 설도 있는 곳이다.
양백지간이라 하는 이곳에 있는 산신각은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순흥으로 유배된 금성대군(단종의 삼촌으로 단종의 복위를 꿈꾸다 사사당함)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영월땅으로 유배되었던 단종이 어느날 하얀 도포차림에 말을 타고 고치령을 넘어가고 있는 단종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 보는 백성들에게 단종이 답하기를...
"태백산"에 놀러 간다고 하였으며 이날 오후 단종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단종의 혼백이 태백산으로 들어 태백의 산신이 되었고 금성대군은 소백의 산신이 되었다고 믿어 혼령이 되어 만나는 조카와 삼촌을 위해 양백지간인 고치재에다 산신각를 짓고 매년 정월14일에는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 오고 있다.
단종대왕과 금성대군을 모시는 고치령의 산신각은 가운데에 산신각(山神閣)이라 썼고 좌우에 있는 주련에는 아래와 같이 써 있다.
왼쪽에는
차산국내지령지성(此山局內至靈至聖)
"산이 모두 영역이 모두 지극하게 성령스럽고 성스러웠으면 한다"
오른쪽에는
만덕고승성개한적(萬德高勝性皆閒寂)
"수만가지 덕이 높고 번성해서 모든 사람의 본성이 여유로우면서 고요하기를 바란다"
고 써 있다.

안개비 추적추적 내리는 어둠에 싸인 등로를 반딧불로 밝히며 보이지 않으며 무서울게 없고 무조건 앞사람만 따라 붙이는 우리의 주요 작전을 철저히 지키면서 발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미내치(美乃峙)에 다다르고 증명사진을 박으나 안개 때문에 상태가 영 좋지 않다.(미치내ㅋㅋ)

미치내를 조금 지나 공터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주변에서 발목을 부여잡는 잡목들을 뿌리치며 깜깜한 등로를 따라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동안에 어둠을 물리치는 그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고 헬기장(1,096m)에 다다르니 어둠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주변의 잡목들의 잎에 담겨 있던 빗물을 흔들면서 등로 주변에 있는 표지목의 번호를 확인하며 마구마구 달려 나아가니 훤하게 밝아오는 임도를 만나 마구령에 다다른다.
馬驅嶺
옛날에 보부상들이 말을 타고 넘나드는 길이라서 마구령이라 했다고 하는데 단양이나 영월 쪽에서 온 장사꾼들은 저녁때쯤 남대리에 당도해 주막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이 고개를 넘었다.
장사꾼 중에는 소나 말을 끌고 온 사람도 많기에 주막에는 소나 말을 맬 수 있는 마구간이 딸려 있어 마구령이라는 이름이 '마굿간'에서 온 것인 듯 하며 경사가 심해서 마치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 라고도 한다.







충분한 휴식후 조금의 오름을 하며 헬기장(894m)을 지나 암릉구간을 통과하고 평탄한 등로를 주마가편하여 달려 조그만한 공터에서 숨고르기를 한다.



숨고르기 후 추적추적 내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완만한 등로를 따라 발걸음을 움직여 갈곶산을 지나 이번 산행의 거의 반지점인 늦은목이에 다달아  숨고르기를 한다.(와 늦은목이 일꼬?)



충분한 휴식후 잘 정비된 나무계단을 밟으며 엄청난 된비알을 치고 오르나 용사들은 그동안 닦았던 내공이 출중하여 한차례 숨고르기 후





선달산 정상에 다달아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산상의 만찬을 즐긴다.
仙達山
소백과 태백을 이어 주는 오작교의 중앙에 위치하여 주변 산군들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데 신선이 놀았다고 하여 "仙達山", 먼저 올라야 한다고 하여 "先達山", 남쪽 기슭에 신선굴(神仙窟)이 있어 선달산이라 한다.
 남쪽으로 "봉황산", 서쪽으로 "어래산과 소백산" 동쪽으로 "옥석산" 동남쪽으로 "문수산"이 있어 정상에 오르면 세상만사 모든 것을 잊게 한다고 한다.
 선달산은 백두대간의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에 솟아 있어 대간을 조망하기에 좋은 산이며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남대천과 어래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박달령이 보인다.


 



막걸리 한말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은 후 우거진 숲속의 마루금을 따라 내림을 계속하며 나무의자가 있는 공터에서 한차례의 숨고르기를 하고 등로 주변에 쭉쭉빵빵의 나무들을 즐기면서 발걸음을 재촉하니 어느새 박달령에 다다른다.













수만발의 대포를 쏘고 난 후 다소 더워진 공기를 안고 엄청난 된비알 치고 오르니 숨이 눈앞 까지 차 오르고 새가 만발이 빠질 정도 이였고 거의 하늘이 노래질 쯤 되어서 등로 주변에서 숨고르기를 한다.
한차례의 숨고르기후 정신력으로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가며 된비알을 치고 나아가니 기맥분기점이라는 표지목을 볼 수 있었고
 


옥돌봉 280m 라는 표지목을 보니 힘이 다시 솟아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마지막 정상인 옥돌봉에 다다른다.
옥돌峰
옥석산이라 불리기도 하는 "옥돌봉"은 옥이 안난 곳이 없고 선경이 아닌 곳이 없다고 하여 옥돌봉이라 하고,  정상에 있는 흰 바위가 예천까지 빛난다 하여 예천바위로 불리기도 하며, 6.25 격전지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증명사진을 박고 난 후 인근에 있는 헬기장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옥돌봉 오름길의 고통을 이야기 하며 웃음꽃을 피웠으며 특히 이종민군이 준비한 언 파인애플은 맛이 주겨 줬다.
충분한 휴식후 다시 내림길을 잡고 진달래터널길을 통과하고 고무라바로 덮힌 나무테크를 밟고 내려 Eco Channel의 터널을 지나 우리의 애마가 기다리는 도래기재에 도착하여 상황종료하고 시원한 맥주를 털어 넣으니 모든 것을 잊게 한다.

용사들을 태운 애마는 영주시로 달려 산행동안 찌든 것을 씻어내고 오늘 산행의 무탈함을 자축하고 계속되는 대간길에 무탈함을 기원하며 하산주를 즐긴다.

오늘 산행은 운행할 때에는 가벼운 안개비가 내렸고 선달산에 다달아 식사할 때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반겨 주어 날씨가 거의 환상적이었다.
그라고 이넘의 똑딱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땅에 떨어져 맥아지를 비틀어버리는 자학을 하여 옥돌봉 이후로는 목에 기부스를 하고 아예 누워 버렸다.(이 넘을 어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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