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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벗이 먼 곳에서 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2. 有朋


올해 덕담의 키워드는 역시 ‘우정’이라... 우(友)테크의 전도사, 고박의 설법은 프린트아웃해서, 버스 지하철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한번씩 음미해보시도록... 사회적 네트워크가 질병을 이기고, 노화를 늦춘다는 정선장의 법문도 같이 새겨야겠지...


새해 벽두,

이병태 시인은... 연초부터, 친구들과 진해 원정에서 더불어 대구탕, 다음날은 시내에서 물매기탕 먹은 얘기로 ‘소통’을 설파하고 계시는데,


정작, 

정초부터 바닷가 촌놈의 입맛이 슬슬 옛 생각에 젖는다.  


참고로, 거, 물메기탕은 동해안에서 최고로 치는 해장국인데... 우리 동네서는 ‘물곰탕’이라 부르제... 다른 매운탕과는 급수가 다르지... 생긴 건 흐물거려도, 시원하기는 기가 막히는데... 듣기에, 우리 아버지, 어판장에서 고기 위에 올라 서셔서, 위판 경매를 주도하는 역할이셨다는데, 오직 이 국만, 드셨다더만... 나도 무시로, 늘 먹던 거인데, 남들이 ‘小食’이라 잘못 알고 있는 불초, 세 그릇까장도 들이킨 적이 있음... 가만,

내 이거, 또 자랑했다가, 동균이한테, 나머지 수염 보전 못할라!! 억울해 마시오. 산골에서 산나물이 지천이듯, 당시 동해안 내 고향에는 대게를 위시하야. 싱싱한 해산물이 지천이었다오... 대신에, 소고기 돼지고기는 명절 때나 겨우, 한 두점 맛보는 귀한 음식이었다는 걸로, 변제가 될랑가... 그나마, 중3 부산으로 유학가서 '하숙'하게 되면서는 그만 이별한, 희귀한 호사라... 우리 어머님, 그 시절 생각하시고, 아들 내려오면, 쇠고기 굽고, 닭 잡을 궁리하시는 통에, 나는 늘 하루 전에, 전화를 해야 했어... “어무이, 그거 여기 서울 흔하거든요!! 간딴하게, 물회랑, 매운탕 하나면 됩니다이...”


다시 본론으로 가자면,


역설적이지만, 우리 홈페이지는 ‘현실’을 일깨우는 곳이다! 이 점을 꼭 짚어주고 싶다. 인정이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에 별 도움도 안되는...” 사진(?)뿐만 아니라, 자잘한 소식들, 푸념들, 만나 불콰하게 술잔 들고, 헤벌쭉 좋다고 웃는 얼굴들...이 모두 그렇게 “쓸모 없는 것들” 아닌가... 그렇지만, 동기 제위... 불초, 정색을 하고 말씀드리건대, 삶은 바로 그 쓸모 없는 곳에 있다!!


인정거사한테 혼날텐데, 몇 마디 현학적 설명을 보태자면, 


노장과 불교가 왜 삶을 ‘꿈’이라고 하는지 아시는가? 생존을 위한 활동들, 경쟁과 목적의 삶 한 가운데서는 ‘내’가 실종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고, 불교는 “父母 未生前, 네가 태어나기 전 너의 본래 모습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 ‘필요(necessity)'의 질곡을 벗어날 때, 즉 ‘꿈’ 속에서 우리는 진정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진정 현실인 이 역설을 이해하시는가.


장자의 절창을 하나 소개한다.


“어찌 알리, 삶을 기꺼하는 것이 미혹이 아닌 줄을. 또 어찌 알리,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닌 줄을... 여희(麗姬)는 애(艾) 땅 수비대 관리의 딸이었다. 진(晉)나라가 (국경을 침입하여) 데려가려 하자 그녀는 옷섶이 흥건하도록 울고불고 했었다. 그러나 막상 왕의 처소에 들어 비단금침을 두르고 산해진미를 맛보고 난 다음에는 처음의 그 어이없는 눈물을 후회했다.

어찌 알리, 죽어 저승에서, 살았을 적 그토록 삶에 집착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른지... 꿈 속에서 술을 즐기다가 아침에 깨어나서는 목놓아 울른지도 모르고, 꿈 속에서 목놓아 울다가 아침에 깨어나서는 흥겨운 사냥길에 나설지도 모른다. 꿈 속에서는 그러나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른다. 혹 꿈 속에서 그 꿈을 해몽까지 하더라만 깨어나기까지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큰 깨침이 있어야 우리의 삶이 진정 한바탕 큰 꿈임을 알아채리. 바보들은 자신들이 깨어 있다 여기고, 우쭐거리면서 이는 ‘위너’, 저는 ‘루저’라 짚어 댄다. 얼마나 굳어 터진 영혼인가. 공자도 그리고 너도 하나의 꿈이다. 너희들이 꿈이라고 말하는 나 역시 꿈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이 이치를 풀어주려 크신 분이 오시리라. 그날이 오기까지 천년 만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혹 뉘 알리, 지금 저 길모퉁이에서 그 분과 맞닥뜨릴지도.”

麗之姬,艾封人之子也。晉國之始得之也,涕泣沾襟;及其至於王所,與王同筐■,食芻豢,而後悔其泣也。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蔪生乎!夢飮酒者,旦而哭泣;夢哭泣者,旦而田獵。方其夢也,不知其夢也。夢之中又占其夢焉,覺而後知其夢也。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而愚者自以爲覺,竊竊然知之。君乎,牧乎,固哉!丘也與女,皆夢也;予謂女夢,亦夢也。是其言也,其名爲弔詭。萬世之後而一遇大聖,知其解者,是旦暮遇之也。旣使我與若辯矣 (莊子, 齊物論第二)



그렇다면? 현실을 꿈(?)처럼 자유하기 위해서는 우정과 친교 등 이른바 ‘비현실’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폭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 예술과 철학이 그래서 있고, 종교와 인문학은 그 전투를 위한 전위의 창칼들이다. 


가령, 배남철 옹이 뜬금없이, 사교 클럽(?)을 만들고, 미술관 음악회를 다니며, 철학적 논제를 포스팅하며, 홀로 배낭매고 기차, 내키는 대로 잡고, 전국을 다니는 것을 보라. 청계포럼, 그리고 마이너 산악회 등, 산을 타는 노구들... 그들이 산에서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고박은 질투나게시리, 혼자 눈덮인 태백산에서, 서정주 시인의 절창을 떠올리게시리, “내리는 눈발 속에서, 모든 인간적 흔적을 덮으며 내리는 눈발 속에서, 괜찮다, 괜찮다”를 읊조리듯 하고 있는가. 미하루의 정사장은 왜 마누님의 손을 잡고, 미안해하며, 어머니와 새로운 유대(?)를 확인하며, 그 ‘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며, 보편의 공감대를, 심금을 울리며, 같은 삶을 겪는 우리 눈가에 눈물, 눈시울 적시게 하는가...

그라고, 우리 종규 거사가 왜 바쁜 변호사 일을 쪼개, 아니 그보다 더 열성으로, 불교를 위시한 삶의 지혜를, 일각의(?) 어렵다는 지청구에도 불구하고, 늘 올려 두어, 동기 제위들을 삶의 한복판으로, 일깨우고 있는가. 조총장은 왜 또 불초의 자다 깬 소리를, 화장실에서 까지, 다시금 읽고 깨달음의 조각들을 만나고 있다고, 적고 있는가.


수교는 왜 또 그런 해외의, 중국어, 아마도 영어, 그리고 이태리어(?)로 번갈아 하는 바쁜 글로벌 사업과 비즈니스의 정신없는 일정, 의 귀한 틈서리에서, 한국을 찾고, 친구들 소식에 늦은 밤, 안도의 미소로 잠드는가(*안 봐도 안다 ㅋ) 거기 또 정선장의 달관한 인생은 어떤가. 인생이 항해라는 것은 오래된 비유이되, 바다 위에서 산 선장 정도는 되어야... 그 비유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는 법... “거친 항해를 거쳐, 우리네 삶이여... 어디로 정박하려는고?”


거기 압권은 춘렬공의 ‘무의미의 시학’일진저... 그 뜬금없는, 때로 난해한 시구들은... 우리를 삶의 공간으로부터 떠나, 바쁜 일상 사이의 휴식, 혹은 산정에서 천하를 조망하는 탈속을 허여한다.


부산에서, 지역별로 모임이 있고, 정기 혹은 번개로 만나, 소식을 나누고, 불콰한 얼굴로, 맥주잔 높이 들고, 정을 돈독히 새록새록 다지며 인생 다 얻은 듯(?) 즐거워하는 사진으로, 홈피를 도배하는가. 동균이는 겨우(?) 달력 하나가 그리 부러웠던지... ㅋ “우리도 만들자”고 팔 걷고 나서는데... 그 애살에, 호응이 별무하니, 서울에서 하나 만들어 주어야 할 듯... 아니한가. 


경희는 왜 또 도움도 안 되는 회장직을 초대받고 ‘영광’이라 하며, 재구 총무는 왜 또 장장 5년의 기간을... 동기들을 위해 봉사에, 또 봉사하며, 보람과 자부심을, 빛나는 얼굴에 한껏 드러내는가. (*재구야, 수열이 작명론처럼, 이름자는 못 벗어난다이. 나는 ‘심(沈),’ “깊이, 진정으로”, ‘재구(在久)’ “오랫동안...” 동기들을 위해 노력하도록 네 이름자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경희는 이름자대로 “기쁘고 축하할 일”이라고 이름자에 안 새겨져 있더나 ㅋ ㅋ)


불초는 또 왜 흘러간 가요를 듣고, 먼 꿈, 적도의 바다를 향해, 꿈의 촉수를 펼치고 있는가. (*미하루 정사장의 적도 여행 계획에... 별 답이 없다고 불평이신데, 때로 어떤 과제는 입밖으로 내기가 두려운 것도 있다. 실현의 어려움, 그리고 발설을 통해 그 보듬던 꿈이 그만 땅에 떨어져 흙묻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겹쳐서이리라...)


그리고, 인목이 얘기처럼, 포스팅, 댓글은 주저 소심하되, “훔쳐보는 재미가 솔솔한” 홈페이지 너머의 동기들이 있다. 시간날 때마다, 이 홈페이지를 들러, 칭구들 소식도 듣고, 삶의 순간들을 공유하는 대다수.... 겡고 동기들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며, 또 당시에는 몰랐던 친구들을 이름과 얼굴을 새로 익히며, 구덕산, 덕형관을 같이 오르내리던 동시대의 동기들... 그 ‘무목적의 인연들’에 힘과 생기를 얻고, 혹은 웃고, 혹은 빙긋할 수많은 홈페이지 저편의 동기들이 있다. 이 공간은, 그런 점에서 아직 ‘학교’이고 ‘공동체’이다. 경쟁이 아닌, 친교의 공동체... 예전 현자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코드를 기본 갖추고 있다.


이 無用의 코드는 동창회의 것만이 아니다. 작금, 우리 사회의 중심 코드로 떠올랐다. '문명'의 사이클이 그렇다. 그 코드를 장악하는 자, 다음 리더가 될 공산이 크다. 


왜 정치권에서는 이태 시인의 말씀처럼, ‘소통’과 ‘공감’이라는 화두가... 경제적 지표나 정치적 테크닉과는 별무상관인, 구름잡는(?) 얘기를 두고 설왕성래하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위로의 책이 백만부 이상의 초베스트 셀러를 기록하는가 말이다.


인간에 대한 오랜 오해가 있다. '현실주의자'일 것이라는 통념...이 그것인데,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상주의자이다."  


각설, 그만 사설 접고... 바텀 라인, 위의 사설을 정리정돈하자면,


이제 늘그막으로 진입하는 겡고 31회... 프롬식 용어로, 그동안 ‘소유’에 올인해 왔다면, 이제, ‘존재’하기 위한 연습도 본격 병행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존재의 '기술'은 다양하다. 나중 몇 가지 소개해 드릴까 하는데, 그 핵심 중 하나가, 고박이 말한 '우테크'이니, 틈틈이 새기고 음미하실 일!!  


아차, 그러고 보니, 불초, 벌써 그 강령 중 하나를 어겼뿟네. 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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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퀴즈 하나... 어디를 범했는지,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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