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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양귀비여 (2) ... 이태백의 아부

2011.05.18 23:25

한형조 조회 수:229

그때... 참 제 갈 길만 가던 가이드... 생각나네. '홍문'도 모르고,  호텔 옆에 있는 '호해'의 무덤도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화가 뻗친 내 서슬에, 결국 간 곳이 건릉... (*수교 사진 잘, 올려놓았네) 거기 올라서, 내, 가이드를 용서해 주기로 했음!! 당 제국의 위용을 한 달음에 느껴 볼 수 있음. 


2.

때는 8세기 중반, 당(唐)나라는 그 당시 전 지구를 통틀어 가장 강력했고, 가장 번성했으며, 가장 진취적이었고, 가장 잘 정비된 제국이었습니다. 이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태종(太宗)이 닦아놓은 반석 위에 반세기동안 이어진 안정과 평화의 결과, 쌀과 옥수수, 비단과 향료가 인도양과 페르시아만까지 수출되었고, 터어키와 사마르칸드에서까지 조공을 받았습니다. 수도 장안(長安)의 호수에는 곱게 칠하고 조각한 놀이배들이 흥청거렸고,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옷이 두사람에 한사람꼴로 비단이었다 합니다. 장안 근처의 어느 비단 공장의 직공수가 10만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크로드 너머 서방에서 비단의 값이 같은 무게의 금값만큼 쳐주던 시절이었으니 그 부(富)의 크기를 짐작할 것입니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습니다. “이런 대접이 있나, 이렇게 돈을 펑펑 쓰다니! 푸른 보석이 박힌 테이블 위에 옥으로 만든 잔, 진귀한 음식들 좀 보게.” 루비를 깎아 상(像)을 만들고, 널 안에다 진주를 깔았을 정도였답니다. 무엇보다도 시인과 예술가들이 최고의 대접을 받던 시대. 어느 비평가의 말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인이었던” 시대, 시 한수로 높은 벼슬이 주어지고, 궁정으로 초대받아 마음껏 호기를 부릴 수 있던 꿈과 낭만의 시대...


이 화려하고 난만한 문화를 배경으로 미인과 황제가 어울렸습니다. 임금은 시인이고 음악가였지요.

모란이 한창인 봄날, 미인과 더불어 연못가에 행차한 황제는 그 흥을 이기지 못해 당대 최고의 시인 이백을 불렀습니다. 어머니가 꿈에 태백성(太白星 Venus)을 보았다 하여 <태백>이라 불리던 사나이.

어쩔꺼나! 스스로 “하늘에서 유배된 신선(謫仙)”이라 뻥을 치고 다니던 이 시인은 황제가 부르던 그날, 마침, 밤새 마신 술로 고주망태가 되어있었습니다. 시종 하나가 그 얼굴에 찬물을 들이부었습니다. 얼핏 정신이 든 이백은 단숨에 이 미인을 찬양하는 시 세 수를 읊어내려갔습니다.


구름은 그대 치마

모란은 얼굴인 듯

그대 소매

봄바람 난간을 스치고

머금은 이슬

오오, 양귀비여!

선녀 서왕모(西王母)의 군옥산(群玉山)에나 가야 만나랴

달밤의 요대(瑤臺)에나 가야 만나랴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청평조사(淸平調詞)"라는 시의 첫부분입니다. 청평조란 설이 분분하지만 산조(散調)니 계면조(界面調)니 하는 것처럼 노래나 곡조의 이름인데, 거기 붙이는 가사라는 뜻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되겠습니다. 노래는 당대의 가인(佳人) 이귀년(李龜年)이 불렀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만한 품격있는(?) 아부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정작 미인께서는 이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시에서 이백은 이 미인을 후한 성제(成帝)의 짝이었던 비연(飛燕)--글자 그대로 “물찬 제비”처럼 날렵한 몸매를 가졌나 봅니다--에게 비유했습니다. 비연이라는 여인은 신분이 미천했는데다가, 끝이 좋지 않았으니 자신을 거기에 빗대는 것이 얺짢았을 법도 합니다.

이 미인은 성품이, 변덕스럽고, 심술에 거만했습니다. 지엄한 황제에게까지 대들어 두번씩이나 쫓겨났을 정도로 강짜가 셌습니다. 제가 보기엔, 역설이나,  그 성질머리가 황제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들어 놓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절대적 권력의 뒤안은 화려한 외양과 달리 쓸쓸한 것입니다. 황제 권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뢰나 존경이 아니라 두려움과 이득의 대상일 터. 그 와중에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는” 여인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권력에 지친 늙은 황제는 이 미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정집안의 건달 떨거지들 전부를 국정의 요직에 앉히고 높은 작위에 봉해주었습니다.



양귀비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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