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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독후감 제출

2011.08.24 11:58

이병태 조회 수:734

 

배남철 동기 덕분에 돈 한푼 안 들이고,  안방에서 전국 일주 기차여행을 했네!

공짜 여행을 했으니 독후감이라도 제출하는 것이 도리 아니겠나? 

  

 

# 청량리역

 

부산 촌놈이 처음으로 서울 아가씨들과 어울려 MT 떠났던 곳.

늘상 허기졌던 젊음의 시발점이자 종착역.

가장 외로운 순간에도 우리들로 하여금 목청껏 노래하게 했던 개찰구.

당시에 우리들은 그 역사 모퉁이를 돌면서 풀리지 않는 문제들과 씨름했었고,

중년이 된 지금 그 답들을 하나 둘씩 맞춰보고 있네.

 

  

# 동해남부선 스위치 백 구간

 

그러고 보니 배남철 동기와 나는 같은 해에, 같은 장소로 수학여행을 갔었네.

국민학교, 중학교 때는 형편 때문에 못 가고,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가보는 수학여행,

장장 12시간의 동해남부선 구비진 궤도가 그래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칸(4반, 박길만 선생님)에 재주 많은 친구들이 많았던 탓.

황우찬 동기가 열창했던 이종용의 '너'가 끝나기가 무섭게 김동우 동기의 'Solitary man'이 이어지고...

그 때 설악동 여관 방에서 함께 조니 워커를 마시며 켄트 담배를 나눠 피웠던 나의 룸메이트,

故 박지홍군은 하마 '피안(彼岸)으로의 여행'을 떠나갔네!

  

 

# 동해남부선 경주 ↔ 해운대 구간

 

복통을 핑계 삼아 박길만 선생님으로부터 조퇴를 허락 받고 무작정 떠났던 길.

동기들이 모두 수학문제 풀이에 몰두해 있을 때, 나 홀로 누렸던 황강 변의 여유.

(※황강 : 경주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

반월성 마루의 코스모스처럼 가냘팠던 그 여고생.

돌아오는 길, 3등 3등 완행열차에서 마주쳤던 나의 암울했던 미래.

 

  

# 경전선 다솔사역

 

내 고향 가는 길.

유년의 내 꿈을 실어나르던 궤도.

1974년 겨울 어느 날, 고향에서의 수렵과 어로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겨울방학 임시 등교일에 맞춰 부산으로 돌아가려고 대기했던 역사.

난데없이 벌어진 역전 앞 깡패들과의 주먹다짐.

KO펀치에 맞아 놓쳐버린 마지막 열차.

그 와중에서도 또렷이 들려오던 라디오의 스피커 음.

'경남고 출신 김승대군 서울대 수석합격'

 

  

# 장항선

 

70년대 말, 갓 입대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수시로 출몰하는 서해안 무장간첩.

무시로 매복했던 장항선 철로 변의 이름모를 야산들.

우리 고참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소식없는 애인을 기다렸던, 그러나 매번 비어있던 그 선로.

어느 순간, 야간매복 준비 중 터져버린 폭발물 안전사고,

피 흘리는 전우를 태우고 무작정 달려갔던 장항읍내,

하지만 굳게 닫혔던 병원문들,

급히 선박을 빌려타고 건너갔던 군산시내.

시설과 인력이 태부족했던 시골병원에서의 응급치료.

장애인이 된 그 전우는 지금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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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음악 : 기차는 8시에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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