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온전함과 존귀함을 알아채시길
2012.04.17 14:26
너무 바빠서 항상 쫓기는 것 같을때 고민 때문에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아 힘들 때 미래가 캄캄하고 불안하기만 할 때
우리 잠시 멈추어요. 단 1분 만이라도 잠시 멈추어요. 삶을 현재에 정지시켜놓고 잠시 깊게 숨을 내쉬어요.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나요? 지금 몸은 어떤 느낌인가요? 지금 하늘은 어떤 모습인가요? 멈추면 비로소 보여요.
내 생각이 내 아픔이 내 관계가
멈추면서 그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것들에 휩쓸려 살아야 했던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잘 보여요.
그리고 멈추면 내 주변이 또 비로소 보여요. 나를 항상 도와주는 가족과 동료들의 얼굴들 매일 지나치지만 볼 수 없었던 거리의 풍경들 들어도 잘 들리지 않았던 상대방의 이야기들
내가 지금 하는 것을 잠시 쉬면 내 안팎의 전체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요. 삶 속의 지혜는 이처럼 내가 뭔가를 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멈춘 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들을 그냥 조용히 알아채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드러나는 것들을 계속해서 알아채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돼요. 마음 안에는 항상 부족하고 온전하지 못한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관조자가 또 있다는 사실을요. 있는 그대로를 보며 즉시 아는 그분이 곧 지혜라는 것을요.
그 관조자와 친해지세요. 그분이 내 마음속 어디에 계시고, 또 어떻게 생기셨는지, 평소에 알던 것을 가지고 상상하려 하지 말고 침묵 속에서 모든 생각이나 상(相)을 다 내려놓고 기도와 명상과 참선을 통해 관조하는 그분을 보려고 하세요.
태초의 고요 속에서 얼굴 없는 그분의 얼굴을 봤을 때 이미 온전한 본래 나를 만난 것입니다. ( 에필로그 )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 혜민 스님 저서 맞습니다. 박변- 감사합니다. |
"멈추면서 그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잘 보인다."는 것은
장기나 바둑 둘 때 '훈수꾼'은 자신의 이해와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어 더 잘 보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지눌스님은 우리의 본성을 空寂靈知라고 표현합니다.
그 중, 허공같이 고요하고 적적한 空寂은 體에 해당하고
신령스럽게 아는 靈知는 用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즉, 공적은 몸이고, 영지는 몸짓입니다.
"마음 안에는 항상 부족하고 온전하지 못한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관조자"는
공적영지 중 영지 즉, 신령스럽게 스스로 아는 '自能知'로 이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