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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논어 혹설> 13 - 공자의 로맨스

2012.07.22 17:02

한형조 조회 수:741

격조했다. 잠깐 틈을 내서... 카페베네에서 글을 올린다. 


오늘은 공자의 드문(?) 로맨스를 한번 볼까 한다. 2년 전쯤... 주윤발이 주연한 <공자, 춘추전국시대>를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번 보시기 바란다. 이 영화를 두고 중앙일보의 배영대 기자가 쓴 글이 있다.


1. [노트북을 열며] 공자의 애인, [중앙일보] 입력 2010.02.16 20:35 / 수정 2010.02.17 09:27


설 연휴에 중국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를 봤다. 영화의 한 장면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공자 생존 당시 음탕하기로 소문난 여인 남자(南子, 위나라 영공의 부인)가 공자를 유혹하는 대목이다. 남자로 분한 미모의 여배우 저우쉰은 요염한 자태로 허리를 꼬며 공자를 홀린다. 공자역을 맡은 저우룬파의 표정도 미묘하다. 저우쉰은 저우룬파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인자애인(仁者愛人)이라고 항상 말을 하고 다닌다는데, 그 말에 있는 인(人)에 평판이 나쁜 나 같은 여자도 포함되는 것입니까?”


위의 대사는 감독의 창작이다. 하지만 전통 유교의 맹점을 정확히 꼬집는 구절로 이해된다. 공자의 어록인 『논어』의 키워드는 인(仁)이며 그 의미는 애인(愛人)이기 때문이다. ‘애인’은 남녀의 연인을 의미하는 명사가 아니라,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의미의 ‘동사+목적어’ 구조로 읽힌다. 지당하신 ‘공자님 말씀’으로 무심코 넘어가곤 했던 『논어』의 허를 영화는 찌르고 들어갔다.


공자와 남자의 만남은 『논어』에 나온다. “공자께서 남자를 만나시었다. 제자인 자로가 아주 기분 나빠했다. 공자께서 이에 맹세하며 말씀하시었다. ‘내가 만약 불미스러운 짓을 저질렀다면 하늘이 날 버리시리라!’…. 이는 사마천의 『사기』에도 역사적 사실로 인용된다. 그런데 이 구절은 해석이 분분했다. ‘성인(聖人) 공자’의 이미지에 자칫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를 신처럼 숭앙하려는 이들이 언급조차 꺼리는 장면을 영화는 과감하게 클로즈업했다. 오히려 실제 기록보다 섹슈얼 이미지를 강화했다. 중국인의 눈에도 이 같은 ‘인간 공자’의 묘사는 신선한 시도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2. 史記 그리고 주자


배영대 기자가 인용한 ��논어��는 ‘옹야’ 편에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초벌 번역하자면 이렇다. 


“공자가 남자(南子)를 만났다.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맹서하기를,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予所否者),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야.”


이 곡절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한다. 그렇다. 사마천의 ��사기��는  공자가 이 “음란한 여인”과의 대면을 꺼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孔子世家”云: “孔子至衛, 南子使人謂孔子曰, ‘四方之君子, 不辱欲與寡君爲兄弟者, 必見寡小君, 寡小君願見。’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夫人在絺帷中, 孔子入門, 北面稽首, 再拜, 環珮璆然。 子曰, ‘吾鄕爲不見, 見之禮答焉。’”


“공자가 위나라로 갔더니, 남자가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푸념했다. ‘사방 군자들이 나를 만나 주려 하지 않는군요. 쪽팔린다고... 나는 당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공자는 사양하다가, ‘마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었다.”


그 다음 서술이 묘하다. “부인은 (영화에서처럼) 주렴 속에서 흔들리고 있고, 공자는 들어가서 북쪽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은은한 패옥 소리가 맑게 들렸다. 공자가 말했다.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예법이 있어...(이렇게 왔습니다.);”


영화는 ��사기��의 이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 12세기 논어 해석의 권위자, 조선조 500년을 지배한 주자의 의견도 이와 비슷하다. 이렇게 적었다.


南子 衛靈公之夫人 有淫行 孔子至衛 南子請見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蓋古者 仕於其國 有見其小君之禮 而子路以夫子見此淫亂之人爲辱 故 不悅 矢 誓也 所 誓辭也 如云所不與崔慶者之類 否謂不合於禮不由其道也 厭棄絶也 聖人道大德全 無可不可 其見惡人 固謂在我有可見之禮 則彼之不善 我何與焉 然此豈子路所能測哉 故重言以誓之 欲其姑信此而深思以得之也


“남자는 위나라 영공의 부인이다. 음행(淫行, 음란한 행실)이 있어, 보자는 요청을 공자가 사양했다. (그러나) 부득이(不得已.. 글자 그대로 그만 둘 수 없어서...라는 뜻)하게, 만나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옛법에는 초빙되거나 벼슬하는 선비는 제후의 부인을 만나 뵙는 것이 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로가) 인상을 찌푸렸던 것이.... (이하 략)”



3. 진실은 어디 있는가?


이 해석이 오랫동안의 통념이었다. 물론, 여기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공자는 정말 “마지 못해서” 남자를 방문한 것일까? 그리고 남자와 공자 사이에 장막 속의 로맨스 라인이 아련히 떴다가 사라진 것일까?


실망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마천이 수많은 기록을 열람하고, 천하를 답사했다고 하나, 공자때로부터 500년 이후의 인물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럼 너는? 2500년 후네.


모든 발언에는 ‘맥락’이 있고, ‘배경’이 있다. 그리고 그 ‘인물’의 가치와 평소 지향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복합되어야 ‘발언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


위나라... 이 나라는 당시 ‘문제 국가’였다.


우선 위 영공 자신이 요즘 말로 ‘호모 섹슈얼’이었던 듯하다.


‘미자하’라는 보이 프렌드(男寵)을 두고 있었다. 그 일화도 빠뜨릴 수 없다. 얼마나 총애(?)했던지 겁이 좀 없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영공의 전용 리무진을 급거 타고 궐밖의 엄마를 찾아갔다. 영공이 웃으면서 넘겼다.  “효자로다. 발 뒤꿈치 짤릴(刖刑) 각오를 하고 내 리무진을 징발하다니...” 어느날 과수원을 거닐다가, 먹다 만 복숭아를 영공에게 내밀었다. “맛이 좋습니다.” 주변에서 “네 이놈!”하고 목을 치려하니 영공이 말렸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면, 그리 했겠느냐.” 나중, 총애가 식고, 사이가 뜨자, 영공이 옛 일을 떠올렸다. “이런 발칙한 놈이 있나. 감히 내 리무진을 타고, 제 쳐먹던 복숭아를 내게 내밀지 않았더냐?”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판단의 객관성’을 믿지 말라! 불교 강의를 할 때 내가 가끔 이 이야기를 예로 든다.


각설, 아마도 남자의 음행은... 영공 탓이 크다. (*아직,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은 없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 남자, 한창 뜨거운 나이게, 보이 프렌드만 찾는 영공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으냐... 남자는 송(宋)나라 출신으로,  결혼 후에도 찾아온 오빠와 근친 불륜의 사이였다고 한다. 


부부가 다, 엉뚱한 곳에서 짝을 찾고 있었다. 문제는 그 ‘아들’ 이었다. 큰 아들 <괴외>는 어머니를 증오했다. 어느 날, 칼을 들고 뛰어들어 엄마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거사는 실패했고, 그는 결국 다른 나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해, 영공이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후계’였다. ‘세자’는 망명해 있고, 남자는 둘째 공자 영에게 권력을 제의했지만, 공자 영은 그러나, 사양했다. “그건 내 자리가 아닙니다.” 남자는 도리 없이... 세자의 아들, 즉 손자인 <첩(輒)>에게 제후의 자리를 물려주려 했다.



4. 공자는 왜 남자를 만났는가.


공자는 아차, 부자간의 골육상쟁을 우려했다. 그리고 당연, 위나라의 혼란과 고통받을 민생을 우려했다. 공자는 ‘마지 못해’ 그냥 ‘인사나 하려고’, 남자를 만난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논어��에 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그야말로 “정명(正名)”,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 바른 해법임을 강조했다. "망명한 세자를 모셔와 뒤를 잇게 해야 한다!"


아, 그거 사람들이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아니, 효(孝)를 지고의 가치로 삼는 유가에서, 그 창시자 공자께서,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나선 패륜아를 다시 모셔, 권력을 이양하라고 권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 된다. 공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다 큰 가치를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현실주의!"


작은 효보다, 큰 백성들의 삶과 정치적 안정 등이 더 중요하고, 갈급하다.


당연히, 여기 제자인 자로와 의견이 갈렸다. 자로는 건달 출신답게 무인형 원칙주의자이다. 공자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괴외를 후계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했고, 자로는 어머니 목에 칼을 들이댄 패륜아에게 권력을 줄 수 없다고 맞섰다.


자로가 공자의 방문을 싫어한 이유가 여기 있다. 


요컨대, 이 구절은 공자의 변명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렇다면 위의 번역들은 다 틀린 셈이다. 맨 처음 나는, 


1)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予所否者)”이라 했고, 배영대 기자는,

2) “내가 불미스러운 짓을 저질렀다면(予所否者)”이라고 했다.


진짜 해석은 3)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予所否者)”이 된다. 감이 오실 터!


��논어�� 원문은 그럼 이렇게 번역된다.


“내 그렇게 (조언하기 위해 남자를) 방문하지 않았다면(否者),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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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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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공자의 충고(?)를 들었을 리 없다! 그예, 손자 첩을 후계로 세웠다. 이가 출공(出公)이다. 정정은 불안했고, 이윽고 세자 괴외가 세력을 모아 위나라로 쳐들어 온다. 괴외가 성루를 점령, 싸움은 결판났는데도 자로는 이 속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 괴외에게 대들다가 목숨을 잃는다. 갓끈이 끊어지자, 자로는 다시 갓을 고쳐 잡으며, “선비가 의관을 흐트리며 죽을 수는 없다”고 외쳤다. 


... 위나라에 정변이 있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공자, 멀리서 탄식했다. “아, 자로가 죽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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