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무릎 곁에서 듣는다 (1) - 편지 묶음, <자성록>
2013.02.21 18:54
대만 1개월의 만고 논(?)... 후유증으로, 눈 치우듯 삽질을 하고 있는데... 공식 요청이 떴네... 대만 답사기도 못 올리고 있는데... 이 행장님 (아차, 본부장님!) ... 참, 축하합니다. 감축 감축...
질문을 받고 보니, 내가 퇴계를 '잘 모른다'는 자괴감부터 밀려오네요... <성학십도> 그림 열장을 '해독' 한 원고를 7년째 묵히고 있는 중이고...
퇴계가 '경영'에 줄 인사이트는 직접 '대화'해야 할 듯합니다. 예전에 내가 쓴 글들을 챙겨 보았습니다. 박종규 옹의 충고대로, <왜 동양철학인가> <왜 조선유학인가> 등에 산발되어 있는데, 그것 읽으려면 책을 사 보아야 하고 (*즉, 돈 들고..), 또 좀 난'철학적'이기도 하고... 해서,
다른 겡고31회 독자들을 고려하여... 일상적인 것, 몇 개를 '우선' 올려드리오니... 각자, 참고하고, 사는데 음미해 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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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자성록(自省錄)>: “젊은 여인이 달이는 차”
“돌을 지고, 모래를 파더니, 어느새 집이 생겼네. 앞으로 가다, 또 뒤로... 정말 발이 많구나. 내 삶은 여기 산골짝, 한 줌 샘물 속인 것을… 강호에 드넓은 물이야 물어보지 않으련다(負石穿沙自有家, 前行却走足偏多, 生涯一山泉裏, 不問江湖水幾何. 15歲) 作).”
새로 발행될 고액권의 인물선정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몇 년 전에 쓴 글임이 드러나네...) 이참에 천원 만원권에 실린 퇴계 율곡까지 갈아치우자는 과격한 소리도 들린다. “이제 좀 아는 사람으로 합시다. ‘성리학자(性理學者)’라는데 뭐하시는 분들인가요?” 딴은 그렇다. 두 철학자는 이순신 장군처럼 왜적을 물리치거나, 세종대왕처럼 어여쁜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적이 없다. 특히나 퇴계는 네티즌들의 불평대로, 위대한 일과는 거리가 있는, 그저 도산에서 홀로 지낸 한 은둔자로 살았을 뿐이다.
*<자성록>이라는 이름의 편지 묶음
그가 남긴 책에 <자성록(自省錄)>이 있다. 책이라고는 하나 기실 자신이 쓴 편지 묶음이다. 퇴계는 자신의 글상자에 베껴둔 수많은 편지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따로 뽑아, “자성(自省), 즉 스스로를 성찰하는” 거울로 삼았다. 1558년, 그의 나이 58세때의 일이다.
서문은 나중에 발견되었다. 그는 거기 이렇게 적었다.
*건강과 일상
그는 편지에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자주 말하고 있다. 그의 나이 58세, 공부의 의욕은 더 커가는데 몸은 노쇠했고, 병은 그를 떠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눈이 침침해서 작은 글씨를 분간할 수 없고, 쉬 피로하고, 또 불쑥불쑥 복통이 찾아온다.” 그는 멋모르고 벼슬길에서 헤맨 30-40대의 15년 세월을 늘 후회해 마지 않았다. 오죽하면 묘지명에 ‘퇴도만은(退陶晩隱)’, “늦게서야 깨닫고 학문을 위해 도산에 은거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겠는가.
*주변의 친구들
입지(立志), 이 학문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영 없지는 않았다. 그는 그 귀한 동지들을 아꼈다. <자성록>에 실린 편지의 주인공들은 퇴계가 인정한 학문의 동반자, 혹은 후배들이다. 그 안에는 ‘사단칠정논쟁’으로 유명한 고봉 기대승, 그리고 갓 23세의 무서운 천재 율곡이 있다. 그리고 생소하겠지만 남언경, 정유일같은 당대의 준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퇴계와 대면하고 있다.
“나 자신 호랑이에게 물려본 적이 있다. 당신들은 이 전철을 밟지 마라.”
학문은 위태로운 물건이다. 지금도 물리고 다친 사람이 많다. 그것은 이를테면, 남다른 지식 혹은 고차원의 깨달음을 성급하게 획득하려는 조바심과 그에 따른 무리수에서 온다. 거기서 작은 지식을 뽐내는 편견과, 세상을 다 아는 듯이 나대는 오만이 자란다. 퇴계는 남언경(南彦經)과 정유일(鄭惟一)이 이런 위험에 빠져 있다고 심각하게 경고한다. “빨리 고치지 않으면 학문이 오히려 마음의 병을 일으켜, 평생의 고질로 굳어질 것이다.” 퇴계는 율곡이 일초돈오(一超頓悟) 입지성불(立地成佛)로 일대사(一大事)를 마치겠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빠졌다가 살아나온(?) 것을 보고 안도하면서 큰 기대를 걸었다.
덕성의 관건은 마음의 내적 중심과 안정이다. 그것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서는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기와 편견을 다스리며, 태만과 오기의 무의식적 습성을 치유 정화시켜나가야 한다. 이를 거경(居敬)이라 하는 바, 퇴계 일생공부의 온축이 여기 실려 있다.
마음이 고요할 때, 세상 이치가 다 드러난다. 그렇지 않은가. 복잡한 기계의 작동 원리나 법정의 소송 규칙들은 따로 익혀야 할 것이지만, 내가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는, 마음의 찌끼와 흙탕물이 가라앉으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사물과 국면은 늘 자신의 길을 보여주지만, 욕심에 쩔고 편견과 구습(舊習)에 가려진 눈에는 그것이 캄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장애를 제거하는 것과 사물의 본모습(理)이 드러나는 것은 동시이다. 그래서 말한다. “사물의 이(理)는 온통 내 마음에 있다.”
퇴계는 일상의 평범한 사태가 절대의 의미가 구현되는 성소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 평범함에 지루해하며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깨달음에 의지하거나, 억지로 사물의 없는 속을 파고들려고 하는데, 거기 학문의 함정이 있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면 마음의 병이 깊어진다. 퇴계는 늘 말한다. “진리는 일용(日用 일상)의 평이하고 명백한 곳(平易明白處)에 있다.”
퇴계는 세종이나 이순신처럼 크고 위대한 일을 한 적이 없다. 너무나 누추한 일상에서 정신의 향기를 피워 올린 개인주의자일 뿐이다. 그 자신,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스스로 향기를 발하는 한 떨기 난초이고 싶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천원짜리 지폐에서 내려오시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는 지금까지 적었듯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임금과 조정, 선비들이 한 목소리로 불러도 사회적 봉사를 마다하신 산속의 한 한가한 은둔자일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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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省錄>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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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저술에 이런 책도 있었나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조선에서 이 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바다 건너 일본의 주자학을 촉발시켰다. 일본의 주자학은 임진왜란때 실어간 책들과, <간양록(看羊錄)>의 강항처럼 잡혀간 선비들과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었는데, 대표격인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 1618-1682)는 퇴계의 저작을 독파하고, 그 학문과 사상, 인격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그의 제자 사토오 나오카타(佐藤直方 1650-1719)는 <동지문(冬至文)>이라는 글에서, 스승 야마자키를 제치고, 퇴계를 유학의 단 한 사람으로 꼽았다. “조선의 이퇴계 이후 ‘성인의 학문’을 진정 떠맡아서 한 사람이 있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그런 감격과 존경의 한 가운데에, 이 책 퇴계의 <자성록>이 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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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2013.02.2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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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2013.02.22 11:23
유교의 공부방법으로 居敬 내지 持敬은 불교의 止觀수행, 지눌 스님의 寂惺等持法,
선종의 참선, 좌선 등과 거의 같다고 보아야겠지요.
기왕에 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박사께 궁금한 것 여쭤봅니다.
희로애락이 未發인 경우의 계신, 공구와 대비하여,
희로애락이 已發인 경우의 愼獨은 오히려 알아차림의 의미로 해석하면 됩니까?
주희의 중화구설 "본성이 본체이고 마음은 작용이다(性體心用)과
중화신설 "마음은 본성과 감정을 통제한다(心統性情) 의 차이점?
중화구설은 선종 홍주종의 작용시성과 비슷한 것은 같은데
중화신설은 마음의 자율적인 의지작용을 중시하는 입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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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록과 그 해설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