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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대만 1개월의 만고 논(?)... 후유증으로, 눈 치우듯 삽질을 하고 있는데... 공식 요청이 떴네... 대만 답사기도 못 올리고 있는데... 이 행장님 (아차, 본부장님!) ... 참, 축하합니다. 감축 감축... 

 

질문을 받고 보니, 내가 퇴계를 '잘 모른다'는 자괴감부터 밀려오네요... <성학십도> 그림 열장을 '해독' 한 원고를 7년째 묵히고 있는 중이고... 

 

퇴계가 '경영'에 줄 인사이트는 직접 '대화'해야 할 듯합니다. 예전에 내가 쓴 글들을 챙겨 보았습니다. 박종규 옹의 충고대로, <왜 동양철학인가> <왜 조선유학인가> 등에 산발되어 있는데, 그것 읽으려면 책을 사 보아야 하고 (*즉, 돈 들고..), 또 좀 난'철학적'이기도 하고... 해서, 

 

다른 겡고31회 독자들을 고려하여... 일상적인 것, 몇 개를 '우선' 올려드리오니... 각자, 참고하고, 사는데 음미해 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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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자성록(自省錄)>: “젊은 여인이 달이는 차”

 

“돌을 지고, 모래를 파더니, 어느새 집이 생겼네. 앞으로 가다, 또 뒤로... 정말 발이 많구나. 내 삶은 여기 산골짝, 한 줌 샘물 속인 것을… 강호에 드넓은 물이야 물어보지 않으련다(負石穿沙自有家, 前行却走足偏多, 生涯一山泉裏, 不問江湖水幾何. 15歲) 作).”

 

새로 발행될 고액권의 인물선정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몇 년 전에 쓴 글임이 드러나네...) 이참에 천원 만원권에 실린 퇴계 율곡까지 갈아치우자는 과격한 소리도 들린다. “이제 좀 아는 사람으로 합시다. ‘성리학자(性理學者)’라는데 뭐하시는 분들인가요?” 딴은 그렇다. 두 철학자는 이순신 장군처럼 왜적을 물리치거나, 세종대왕처럼 어여쁜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적이 없다. 특히나 퇴계는 네티즌들의 불평대로, 위대한 일과는 거리가 있는, 그저 도산에서 홀로 지낸 한 은둔자로 살았을 뿐이다.

 

*<자성록>이라는 이름의 편지 묶음

 

그가 남긴 책에 <자성록(自省錄)>이 있다. 책이라고는 하나 기실 자신이 쓴 편지 묶음이다. 퇴계는 자신의 글상자에 베껴둔 수많은 편지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따로 뽑아, “자성(自省), 즉 스스로를 성찰하는” 거울로 삼았다. 1558년, 그의 나이 58세때의 일이다.

서문은 나중에 발견되었다. 그는 거기 이렇게 적었다.

 

“내 그동안 학문의 이름으로 여러 학자 친구들과 수많은 얘기를 했다. 그것만도 부끄러운 일인데, 주고받은 내용 중에 상대방은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까마득히 잊은 것도 있고, 저도 나도 함께 까먹어 버린 것도 있다. 이는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인생 함부로 사는 태만에 가깝다. 정말로 두렵다. 그래 옛 글상자를 뒤져, 남아있는 편지를 베껴 책상에 두고, 수시로 읽으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이로써 글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을 면했다. 잃어버린 편지들도 더러 있지만, 그 취지도 지금 베끼는 글들 속에 다 들어있을 터이다. 그렇지 않다면, 편지를 몽땅 베껴 키만큼 쌓아놓는다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今與朋友講究往復, 其言之出, 有不得已者, 已自不勝其愧矣, 況旣言之後, 有彼不忘而我忘者, 有彼(與)我俱忘者, 斯不但可恥, 其殆於無忌憚者, 可懼之甚也, 間搜故篋手寫書藁之存者, 置之几間, 時閱而屢省(之), 於是而不替焉, 其無藁不錄者, 可以在其中矣, 不然, 雖(盡)錄諸書, 積成卷帙, 亦何益哉. (嘉靖戊午, 端午後一日, 退溪老人識)

 

허면, 퇴계의 그 방대한 <문집>을 다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 이 22편의 편지 안에 그의 학문의 대강, 혹은 개략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 아닌가.

 

편지인 만큼 <자성록>은 일상에서 학문까지에 걸쳐 있다. 아니, 퇴계에 의하면 일상이야말로 학문의 중심이다.


*건강과 일상

 

그는 편지에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자주 말하고 있다. 그의 나이 58세, 공부의 의욕은 더 커가는데 몸은 노쇠했고, 병은 그를 떠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눈이 침침해서 작은 글씨를 분간할 수 없고, 쉬 피로하고, 또 불쑥불쑥 복통이 찾아온다.” 그는 멋모르고 벼슬길에서 헤맨 30-40대의 15년 세월을 늘 후회해 마지 않았다. 오죽하면 묘지명에 ‘퇴도만은(退陶晩隱)’, “늦게서야 깨닫고 학문을 위해 도산에 은거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겠는가.

 

그런데도 임금 명종은 그를 조정에 불러오고 싶어했다. 퇴계는 가지 않았다. 마지못해 올라가다가 더위 먹고 힘에 부쳐 그만 길을 돌렸더니, 세상이 온통 비난으로 가득했다. 그게 또 못 견딜 일이었다. 퇴계는 자신이 병에 잠겨있고, 그를 높이는 명성이 다만 허명(虛名)이라는 것, 그리고 실제 사무에 익숙치 않다고 늘 변명해댔다.


*주변의 친구들

 

퇴계 주변은 쓸쓸했다. 과거시험에 바쁜 선비들만 오갈 뿐, 주변에 진정한 학문에 뜻을 세운 사람들이 없었다. 혹간 있어도, 세상의 유혹과 가족의 권유에 밀려 그만 포기하고 만다. 가정에 우환이 겹치거나, 먹고 살기에 너무 빠듯해도 이 공부에 매진할 수 없다. “요즘 한 둘이 찾아와서 묻는데, 과거시험에 관련된 것이라 서로 도움되는 바가 없다. 서울사람 김명원이 와서 <주역>을 읽고 있다. 괘와 효의 변화를 따지는 것 또한 성리(性理), 즉 우주 안의 인간의 길에 관련된 것이기는 하나, 심신의 일상적 훈련에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 매일 몇 괘씩 읽고 토론하는데... 쉬 피곤해져서 다른 책에 미칠 정력이 없다.”

 

산중에서 혼자 친구도 말동무도 없이 우두커니 그림처럼 앉아있는 퇴계 노인이 떠오른다. 그는 당세에 이 공부의 벗을 찾기 어려워 옛 사람들과 책을 통해 얘기를 나눈다고 적었다.

 

*학문을 시작해도 함정에 빠지기 쉽다


입지(立志), 이 학문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영 없지는 않았다. 그는 그 귀한 동지들을 아꼈다. <자성록>에 실린 편지의 주인공들은 퇴계가 인정한 학문의 동반자, 혹은 후배들이다. 그 안에는 ‘사단칠정논쟁’으로 유명한 고봉 기대승, 그리고 갓 23세의 무서운 천재 율곡이 있다. 그리고 생소하겠지만 남언경, 정유일같은 당대의 준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퇴계와 대면하고 있다.

 

퇴계는 이들의 뜻을 기리고 그 용기를 치하하지만,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을 경고한다.

 

“나 자신 호랑이에게 물려본 적이 있다. 당신들은 이 전철을 밟지 마라.”

 

학문은 위태로운 물건이다. 지금도 물리고 다친 사람이 많다. 그것은 이를테면, 남다른 지식 혹은 고차원의 깨달음을 성급하게 획득하려는 조바심과 그에 따른 무리수에서 온다. 거기서 작은 지식을 뽐내는 편견과, 세상을 다 아는 듯이 나대는 오만이 자란다. 퇴계는 남언경(南彦經)과 정유일(鄭惟一)이 이런 위험에 빠져 있다고 심각하게 경고한다. “빨리 고치지 않으면 학문이 오히려 마음의 병을 일으켜, 평생의 고질로 굳어질 것이다.” 퇴계는 율곡이 일초돈오(一超頓悟) 입지성불(立地成佛)로 일대사(一大事)를 마치겠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빠졌다가 살아나온(?) 것을 보고 안도하면서 큰 기대를 걸었다.

 

“그대가 불교책들을 읽고 거기 중독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아깝게 여긴지 오래다. 그랬는데 올 봄에 만났을 때, 그 과오를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고, 또 지금 보내준 두 편지를 읽어보니, 그대가 ‘가히 더불어 道에 나가갈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겠다. 다만, 두려운 것은 ‘새 맛은 낯설고, 익숙한 곳은 잊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곡이 익지도 않았는데, 제패(稊稗, 피)의 가을이 닥칠까 두렵다. 이를 면하려면, 다른 것 기다릴 것 없이 궁리(窮理)와 거경(居敬)에 십분 면려해야 한다. 그 방법은 <대학(大學)>에 나와 있고, 주자의 <장구(章句)>가 밝혔으며, 그의 <혹문(或問)>이 남김없이 풀어주었다.”

 

*퇴계의 공부법

 

퇴계가 지금 적은 거경궁리(窮理居敬)의 공부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학>이 담고 있고 주자의 해석들이 분명히 밝혀놓은 것이라는데, 지금 그 수련의 개략을 적어보려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는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와 대학의 전공, 그리고 회사 직장에서의 실무 노하우와 살아가면서 필요한 생활의 지혜 등일 것이다. 퇴계는 이 부면을 ‘견문(見聞)의 지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으로 그만 충분할까. 퇴계는 유학의 전통을 따라 이 지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덕성(德性)의 지식’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견문의 눈먼 지식들은 자신의 성장은 물론,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해칠 수 있다. 지식은 양날의 칼이다.

덕성의 관건은 마음의 내적 중심과 안정이다. 그것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서는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기와 편견을 다스리며, 태만과 오기의 무의식적 습성을 치유 정화시켜나가야 한다. 이를 거경(居敬)이라 하는 바, 퇴계 일생공부의 온축이 여기 실려 있다.

마음이 고요할 때, 세상 이치가 다 드러난다. 그렇지 않은가. 복잡한 기계의 작동 원리나 법정의 소송 규칙들은 따로 익혀야 할 것이지만, 내가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는, 마음의 찌끼와 흙탕물이 가라앉으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사물과 국면은 늘 자신의 길을 보여주지만, 욕심에 쩔고 편견과 구습(舊習)에 가려진 눈에는 그것이 캄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장애를 제거하는 것과 사물의 본모습(理)이 드러나는 것은 동시이다. 그래서 말한다. “사물의 이(理)는 온통 내 마음에 있다.”

퇴계는 일상의 평범한 사태가 절대의 의미가 구현되는 성소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 평범함에 지루해하며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깨달음에 의지하거나, 억지로 사물의 없는 속을 파고들려고 하는데, 거기 학문의 함정이 있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면 마음의 병이 깊어진다. 퇴계는 늘 말한다. “진리는 일용(日用 일상)의 평이하고 명백한 곳(平易明白處)에 있다.”

 

남시보에게 그는 이렇게 권했다.

 

“일체의 영욕과 명예, 세상의 관심과 시선을 몽땅 마음밖으로 물리치십시오. 이게 되면 문제의 절반 이상이 해결됩니다. 평상시 수작을 줄이고, 욕망도 내려놓고, 허허로운 마음으로 여유있게 지내십시오. 때로 책과 화초를 감상하고, 시내와 물고기와 벗하십시오. 늘 보는 것이라 해서 싫증내지 말고, 마음을 늘 편하고 긍정적으로 갖고, 울컥 화를 내지도 세상과 거슬리지도 마십시오. 이게 비결입니다. 책도 많이 읽으려 하지 말고 적절히 음미하는데 그치십시오. 사물의 원리는 일상적이고 단순한데서 드러납니다. 그곳을 떠나지 마시고, 헤엄치듯 노니십시오. 억지로 붙잡으려 용쓰지도 말고, 그렇다고 주의의 끈을 놓아버리지도 마십시오. 다만 사물을 의식의 혼란과 침몰 없이 바라보는데 주력하십시오. 그 훈련이 오래 쌓이면, 어느날 자신이 덜컹 변하는 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하루 아침에 이 경지를 얻겠다고 부릅뜬 눈으로 자신을 속박하지는 제발 마십시오.”

 

*퇴계의 충고, “자처(自處)가 태고(太高)하다”

 

편지의 주인공들은 당대의 천재 명사들이었고, 높은 관직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자부심이 오죽했겠는가. 퇴계는 그들의 오만과 경솔을 때로 대놓고, 때로 온건하게 타이른다. 정유일에게는 “벌써 천하의 이치를 다 깨달은 듯이 자처하지 말라”는 것을, 이항에게는 “옛말에, ‘자기만 있지 남이 있는 줄을 모른다’더니 자기가 세상 제일인 줄 안다”고 불쾌해 했고, 이발(理發) 한 길로 일관하는 기대승에게는 “어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더냐”고 핀잔을 했고, 율곡에게는 “머리는 좋고 논리가 뛰어난데, 말에 무게가 떨어지고, 행동에 정성이 부족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온화하고 온건한 성품이었지만, 논점을 따질 때는 치밀했고, 기준에 어긋난다 싶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보매, 이 기준들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고, 논쟁의 종국은 성찰과 수양으로 귀착된다. 그는 자신의 말에 충분한 책임을 질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자성록>이 있게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함으로써 위대해 졌듯이, 말과 자신의 거리를 자인함으로써 비로소 퇴계가 있게 되었다.

 

*평범해서 위대한 사람

 

일본주자학은 주자 이후의 학자로 단 두 사람, 명나라의 설선(薛瑄 1392-1464)과 조선의 퇴계를 꼽았다. 그들은 설선이 뛰어난 논리와 새로운 주장을 편 반면, 퇴계는 이렇다 할 주장 없이 주자학을 그저 배우고자 노력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기실 퇴계의 작품들은 거개가 ‘편집’이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도 주자의 편지를 선록한 것이고, <성학십도(聖學十圖)> 10폭 가운데 자신의 주장이래야 제6도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의 세 그림 가운데 겨우 하나에 그친다. 사토오 나오카타(左藤直方)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별 신기할 것도 없는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퇴계의 격이 설선보다 훌쩍 높다고 평가했다. 창의가 살길이고 튀어야 알아주는 세상이라,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만...

 

사토오는 그리고 나서 이런 비유를 들었다.

 

“퇴계는 이를테면 젊은 여인이 차를 달이고 있는 것같다.”

 

이 소식을 알겠는가. 이 말에 짚이는 바 있다면, 그대는 퇴계의 학문에 반 너머 동참하고 있는 셈이 된다.

퇴계는 세종이나 이순신처럼 크고 위대한 일을 한 적이 없다. 너무나 누추한 일상에서 정신의 향기를 피워 올린 개인주의자일 뿐이다. 그 자신,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스스로 향기를 발하는 한 떨기 난초이고 싶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천원짜리 지폐에서 내려오시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는 지금까지 적었듯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임금과 조정, 선비들이 한 목소리로 불러도 사회적 봉사를 마다하신 산속의 한 한가한 은둔자일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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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省錄>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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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저술에 이런 책도 있었나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조선에서 이 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바다 건너 일본의 주자학을 촉발시켰다. 일본의 주자학은 임진왜란때 실어간 책들과, <간양록(看羊錄)>의 강항처럼 잡혀간 선비들과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었는데, 대표격인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 1618-1682)는 퇴계의 저작을 독파하고, 그 학문과 사상, 인격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그의 제자 사토오 나오카타(佐藤直方 1650-1719)는 <동지문(冬至文)>이라는 글에서, 스승 야마자키를 제치고, 퇴계를 유학의 단 한 사람으로 꼽았다. “조선의 이퇴계 이후 ‘성인의 학문’을 진정 떠맡아서 한 사람이 있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그런 감격과 존경의 한 가운데에, 이 책 퇴계의 <자성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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