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에서 띄우는 편지
2007.05.19 10:07
선상에서 띄우는 편지
- 졸업 30주년을 맞으면서 -
Ⅰ. 달콤했던 학창시절이여
아, 우리들의 그
달콤했던 학창시절이여!
삼십년 만에 네 모습을
다시 찾는구나
1974년 3월의
이른 봄에 시작되어
1977년 2월의
마른 구근들이 싹트기 전까지
부산 서구 동대신동 3가 1번지의
검은 산비탈 학교에서, 우리들은
승학산 억새처럼 조금씩 자랐었다
한 해전인 1973년 어느 봄날
문교부의 평준화 포고령이
불쑥 내려지면서, 우리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학사일정을 무단히 접고
이제 쓸모가 없어진 참고서들을
재빨리 폐기한 바 있었다.
1974년 춘삼월의
봄볕이 따스하게 내리던 날, 우리들은
자갈치시장의 뺑뺑이판을 쏙 빼닮은
그 곳 원형관을 지나
가입학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낯선 입학식장으로 향했었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에사
돌이켜 보면
그 때 우리들은 저마다
성장과 성숙이 교묘하게 접전하던
사춘의 전장에서 날마다
조금씩 패배하고 있었다
쉰내에 푸-욱 절은
푸른 교련복을 입고
팥고물같은 연탄재를
쉼없이 들이마시며, 온종일
가상의 적진을 향해
일도 정진하다가도
교정의 버찌나무 아래
봄밤이 무르익으면
저 멀리 수원지에서 불어오는
밤나무 향기를 어쩌지 못하여 무시로
자습실 뒷담을 넘곤 했었는데
담을 넘는 순간
무정형의 시대가 그어놓은
도처의 공제선에 노출되고
오래된 가난이 매복시킨
한많은 결손에 정조준되어
골목안 할매집
몰래 피우던 수정담배의
채 털지 못한 담뱃재처럼 맥없이
커트라인 바깥으로
떨려나갔었다
Ⅱ. 태양의 저 편으로
30년 저 쪽의
어두운 기억 저 편에서
환히 웃고있는 몇몇
성급한 친구들은 벌써
태양의 저 편으로 떠났다
그리운 지홍아,
네가 생전에 자주
땡땡이를 쳤던
그 눈부신 오월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좋아했던 계절과
싫어했던 계절을
유난히 구분했던 너는
그처럼 빛과 어둠도
일찍 갈랐구나
너랑 나랑 종종
방과후 자습을 했던
원형관 1층의
2학년 4반 교실에도 지금쯤은
봄 내음이 가득할 것이다
그 때 학교밑 제과점에서
엉덩이가 동그란 여고생을
함께 기다리고
낙동강 하구의 먼 둑길을
같이 걸으면서도 나는 한 번도
원양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너의 외로움을
나눠갖지 못했었는데
이제 태양의 저편으로 영영
아버지를 떠나보낸 네 아들
성훈이의 그 짙은 외로움을
내가 어찌 나눌 수 있겠느냐
그리고 성우야,
먼 길 잘 도착했느냐 그래서
생전의 단짝, 지홍이는 만났느냐
지금도 영도지역 모임때면
너의 그 젠틀한 체취가
새록새록 묻어난다
일전에, 생전의 네 인연 한 분이
너의 안부를 물어오길래 그냥
먼 길 떠났다고 전했다
한때 네가 출장갔던
지구 저쪽 콜롬비아 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났다고
그렇게 전할 수 밖에 없었다
성우야, 우리 다음에 다시
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때는
형편이 좀 나은 집을 알아보자
그래서 선생님이 가정방문 오셔도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모님들이 주신다는 그 꿈속의
용돈이란 것도 한 번 받아보고
그리하면 네가 살이에 지쳐
쓴 소주를 들이킬 일도,
쓴 소주에 떠밀려
그처럼 허망하게 떠날 일도
없을 것 아니겠나
Ⅲ. 중년의 꿈을 찾아
30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딱히 아름답지만도,
쓸쓸하지만도 않은
그 긴 시간의 뒤안길을
물어 물어 오면서 우리들은
많이들 지쳤다
한 친구는 농꾼이 되었고
한 친구는 봉급쟁이가 되었고
한 친구는 장사꾼이 되었으며
한 친구는 그 무엇이 되었지만
이제 어느 친구도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다
다만, 모두들 유일하게 중년,
중년으로 불릴 뿐이다
중년의 길,
그 삭은 명찰을 달기 위해 우리들은
꼬박 30년이라는 세월을
저당잡혔었지만, 그 사이
많은 말들이 자리를 바꾸었다
한 때 우리들의
젊은 사랑이 둥지를 틀었던
그 공원의 갈대숲엔
중년의 탄식만이 맴돌고
한 때의 뜨거웠던
우리들의 정열은 이제
폐선처럼 삭아내리며
날섰던 이념의 푯대는
제 무게를 못 견뎌
허리를 꺽는다
그 길에서도 하지만
우리들은 재회할 것이다
고단했던 30년의 여정은
이쯤에서 끝내고
끝난 곳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신산스런 30년을
길에서도 쉬지 못하고
객승처럼 떠 돈
우리 중년들에게도
꿈속의 여정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은 용도폐기된
감각기능의 명부에서
잃어버린 빛을,
향기를 되찾으러
남쪽바다로 떠나가자
그리하여 서른 번의
애끓는 시도 끝에 모처럼
다시 별자리를 찾은
이 중년의 봄밤에
남쪽하늘에서 반짝이는 별하나,
별 하나에 중년의 침묵과
별 하나에 중년의 외로움과
별 하나에 중년의 새꿈을 찾아서
떠나가자
댓글 6
-
홍성수
2008.03.17 15:44
-
이름
2008.03.17 15:44
이 멋진 시가 팬스타 크루즈 선상에서 이태시인에 의해 낭송 되었더라면
우리모두 중년의 새꿈을 찾아 가는데 더 큰 감동이 되었을텐데...
이태시인아!
아숩고 고맙데이!
- 영호 - -
수열
2008.03.17 15:44
친구야!
우리는 단지 함께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한 함께 보았던 그시절, 함께하였던 그행동 이러한것들이
우리의 동질성을 느끼게 하네.
4막4장의 연극무대에서 앞서거니,뒷서거니,강한자가 약한자에게
못할짓이 없고,약한자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 이 인생무대위 에서..
가을의 끝자락(3막의 마지막 49세로) 에서 秋 霜 으로 할퀴어진
가슴에 품은 코스모스의 작은 꽂잎 일지라도.
아직도 남은 climax point 에 맞추어 앞으로 펼치질 미지의
호기심에 가슴을열어 35주년,40주년 만남을 당당하게 맞이하자.
왜냐하면 병태 말대로 꿈속의 여정은 여전히 아름답고,
청춘의 들끊는 피는 아직도 뜨겁기 때문에...
-수열-
-
조현우
2008.03.17 15:44
수열아 우리들의 앞날은 30년 전이나 앞으로의 남은 여생도 언제,어디서나,누구할것 없이 우리가 하나되어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은 아름다울 수 밖에.....
가슴 속 깊이 스며드는 찡~~하는 너의 깊은 속 마음이 부럽네 그려!!! -
이병태
2008.03.17 15:44
지난 5월, 여러 가지로 능력이 부족한 제게는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두 개의 큰 행사', '2건의 금융인 자격시험 응시',
'전문대학원 2과목의 미국인 교수 원어 강의'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상 그 밖의 모든 일정은 유보시켜 둔 상태였지만,
동기들을 위하여 수고를 金衣처럼 두르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홍성수동기의 요청만은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시원찮은 글을 적으면서 먼저 떠난 친구들 생각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지홍아, 성우야, 그 밖에 먼저 간 친구들아, 조만간 우리 다시 보자! -
이름
2008.03.17 15:44
지난 학창시절....
그리운 친구들...
이젠,, 중년의 나이...
남들이 말하는 "세월 참 빠르다!! 그치...."
어쩜 지나 온 세월보다, 남은 세월이 얼마 남지 않은듯...
그러나 혹자는 말했지...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꼬..."
그저,, 열심히,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보자꾸나!!
병태가 어렵게 시간내어 멋진 글을 써 주었는데
지금 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가슴을 뭉클게 하네!!
친구여,, 고마우이!! 우리들의 마음을 전달 해줘서....
p.s : 성수야!! 내 보고 대신 낭송해라 하지... 나 방송반 출신인데...ㅋㅋ
심재구올림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3 | ♣ 인생에서 필요한 5가지 끈 ♣ | 고박 | 2007.05.23 | 410 |
182 | 누드 플래쉬- 기별야구 결승진출을 기원하며... | 재경동기회 | 2007.05.23 | 512 |
181 | 재경 근조기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 재경동기회 | 2007.05.22 | 409 |
180 | 기별야구 8강전 이모저모... [4] | 재경동기회 | 2007.05.21 | 612 |
179 | 승전보 [3] | 재경동기회 | 2007.05.21 | 504 |
178 | 장학금 감사 E-mail을 소개합니다. | 회장단 | 2007.05.20 | 437 |
177 | 내일 12시 기별야구 8강전 많은 응원과 참여 바랍니다!!! [1] | 재경동기회 | 2007.05.19 | 404 |
» | 선상에서 띄우는 편지 [6] | 이병태 | 2007.05.19 | 812 |
175 | 홈캄잉 기획단 최종 결산모임 공고 | 회장단 | 2007.05.19 | 439 |
174 | 동기회 주소록을 볼라는데 안되네... [1] | 이민재 | 2007.05.17 | 525 |
173 | 맛있는 소풍逍風 [2] | 이승진 | 2007.05.17 | 497 |
172 | Penis - 여성은 출입금지! [1] | 고박 | 2007.05.17 | 671 |
171 | 거침없이 유쾌하게... [1] | 고박 | 2007.05.16 | 490 |
170 | 홈캄잉행사에 참석하신 은사님 모습 [1] | 회장단 | 2007.05.15 | 506 |
169 | 스승님들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 고박 | 2007.05.15 | 378 |
168 | 기별야구 2차전및 홈컴잉 애프터 이모저모... [2] | 심재구 | 2007.05.14 | 669 |
167 | 慶州 칠불암 가는 길 [6] | 박춘렬 | 2007.05.14 | 616 |
166 | 건달들, 광안리 할매를 만나고 왔습니다. [5] | 이승진 | 2007.05.14 | 760 |
165 | 이겼습니다... [4] | 재경동기회 | 2007.05.13 | 515 |
164 | 70-80 콘서트 [1] | 고박 | 2007.05.12 | 568 |
홈캄잉 때, 크루즈 행사에서 동기참여의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이병태동기에게 자작시와 함께 낭송을 해달라는 어려운 부탁했었습니다.
바쁜 은행소 일을 제쳐두고 준비를 해왔으나,
일요일인 다음날 급한 용무 때문에 학교방문 행사에만 참석하였으며,
그 때 제게로 건네준 A4 용지 6장에 써둔 이태시인의 '선상에서 띄우는 편지'는
결국 선상에서 발표하지 못한 채 제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저보고 대신 시를 낭송하라고 했지만 감히 실행하지 못하고
오늘에사 홈피에 이태시인의 이름으로 올립니다.
이를 해량해 주시기를....
아마도 그때
선상에서 직접 낭송해 주었다면 그 감동은 훨씬 더했을 것 입니다.
몇 번을 생각해도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
어려운 부탁 거절치 않고 흔쾌히 받아준 이병태 동기에게 감사함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