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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괘방에서 우두까지

2009.04.08 14:55

안중수 조회 수:392

산행 전날 만큼은 술독과 대화를 하지 않기로 하였지만 그 넘의 정 때문에 할 수 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일찍 일어나지 못해 약속시간 1분 전에 술독에 빠진 쥐새끼 처럼 비실비실 집결지에 겨우 도착하였고 알콜에 저린 몸을 구겨 넣을 자리를 찾아 조용히 처박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칠곡휴게소에서 도착하여 비몽사몽간에 회장님께서 하사하신 아침식사와 마산아지매가 주신 빵을 감사하게 먹고 다시 애마에 올라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애마는 오늘 산행 들머리인 괘방령에 도착한다
.





掛榜嶺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갈 때에는 聞慶, 竹嶺, 秋風嶺 등을 지나는데 과거를 보려는 유생들은 꼭 聞慶을 넘어려 했다.
유생들이 돌아가더라도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다"는 것 때문에 한사코 문경을 고집하였다는데 죽령은 "쭉쭉 미끄러지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라는 것 때문에 기피하였다.
영남 유생들이 문경을 지나지 못하고 추풍령으로 가야 할 때는 추풍령의 남쪽 고개인 掛榜嶺을 넘었다는데 괘방은 "榜에 이름이 걸린다"는 뜻으로 급제된 명단에 듣다는 것을 유생들이 좋아 했던 것이다.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을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 길이며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이었다. 

애마에서 내려 기계적으로 장비를 챙기고 주변경관과 단체 증명사진을 박고 대장님의 주의사항을 듣고 난 후 대간 마루금의 자연과 대화를 위해 좌측 숲속으로 빨려 들어가니 등로 주변에 활짝 핀 진달래가 반겨 주고 낮은 언덕배기를 넘어 평탄한 등로를 가다 된비알을 오르니 온몸에서 알콜이 서서히 베어나기 시작한다.



몇번의 오르/내림을 하며 다소 차가운 북서풍의 바람을 맞으며 마루금을 따라 고도를 높여 나아가니 옛날에 여우들이 많이 있었다는 여시골산 정상에 다다른다.
그때 그 시절 전설의 고향에서의 방영한 구미호와 가난한 젊은 총각의 기맥힌 사연이 담긴 내용이 떠오르면서 다시 한번 약속에 대한 중요함을 느낀다.







잠깐동안의 숨고르기 후 낙엽 덮힌 내리막 등로를 따라 발걸음을 나아가니 우측에 여우들의 굴인지? 폐광산 인지? 모를 큰 수직 웅덩이를 볼 수 있었고 바람에 낙엽이 날라가 먼지가 많이 나는 등로를 따라 가벼운 오르/내림을 하며 고도를 높여 운수봉에 다다르고
 






잠시 숨고르기 후 약 5분 정도 나아가  직지사로 내려가는 삼거리인 너른 공터가 있는 안부에서 휴식을 취한다.



어제 부린 객기로 조여오는 가슴의 고통과 종아리 근육의 통증을 감내해야만 하였고 너무나도 정확하게 거리가 표시된 표지판을 보며 잘 정비된 등로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고 나무계단의 오름길을 올라서니 탁 틔인 조망대를 만나고 주변경관을 조망하며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저멀리 황악산 정상을 바라보며 등로 주변의 돌탑과 표지목을 뒤로 하고 진달래를 심어 놓은 습지같은 평탄한 곳을 지나 아이스케키와 캔맥주를 판다는 곳에 다다르니 갑자기 시원한 맥주 한모금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곤천산 가는길이 표시된 표지목을 지나 잠시 오름을 하니 이미 일행들이 도착하여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황악산 정상에 다다르고 곧이어 뒤늦게 도착한 31공사가 준비한 아이스케키를 빨아 묵으니 목구멍이 즐거웠고 주변경관의 조망은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황악산은 비로봉(1,111.4m)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 신선봉(944m), 운수봉(74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육산으로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하여 비단같이 부드러운 편이며, 초입부 일대에는 내원, 운수계곡과 능여계곡 양쪽으로 늘어선 노송과 참나무가 하늘을 가려 장관을 이룬다.
김천시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백두대간 가운데 위치하며 예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불렀으나 직지사 현판과 택리지에는 황악산(黃岳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단체증명사진을 박고 난 후 가파른 내림길과 나무가지에 가려 주변경관을 볼 수 없는 등로를 따라 약 10분 동안 발걸음을 재촉하니 형제봉에 다다른다.



형제봉을 뒤로 하고 약10분 정도 나아가니 신선봉 갈림길인 삼거리에서 신선이 되어 앉아 있는 33회 태웅군을 만나고


 
우측으로 방향을 꺽어 잘 정비된 나무계단의 가파른 내림길을 따라 발걸음을 움직이면서 낙엽이 쌓여 있는 주변경관을 즐긴다.



참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낙엽 덮힌 등로를 따라 부드러운 발걸음을 하니 바람이 강하게 불어 표지석의 글자도 흔들려 버린 헬기장이 있는 바람재에 다다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람소리 악단의 연주를 들으면 품위있는 산상의 만찬을 즐긴다.
광수는 내어도 내어도 또 나오는 개나리봇짐에서 엄청난 물자를 공급하고 종근이는 정성스레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내어 놓어니 식탁은 오랜만에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으며 아쉬움이 있었다면 얼려 온 막걸리가 일기불순 관계로 마시지 못하고 녹혀 먹어야 하는 거의 샤베트 상태로 먹어야 했었다. 
 


만찬후 잘 정비된 나무계단의 된비알을 조심스레 올라 무인 통신시설을 좌측으로 하고 임도를 따라 가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여정봉을 가르키는 표시목을 보고 잡목이 우거져 걸음이 불편한 등로를 힘겹게 나아가니 앞이 탁 틔인 조망대를 만난다.



등로 주변의 나무로 인해 조망은 힘들었으나 중간중간 틔인 조망점에서 내원계곡과 능여계곡의 주변경관을 즐길 수 있었고 몇차례 가벼운 오르/내림을 하면서 지나 온 황악산을 뒤돌아 보는 사이에 앞선 일행이 숨고르기를 하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지난번 마루금잇기때 붙혀 놓았다는 시그널을 가르키는 박변의 조크에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었고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편안하고 평탄한 참나무 군락 사이로 난 등로를 따라 계속 나아가니 Eco channel을 표시하는 대형 표지판을 보고
 


조금 더 발걸음을 움직이니 날머리인 우두령에 도착한다.
우두령은 소의 머리 같다고 牛頭嶺이라 하나 소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도구인 "길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질매"는 "길마"의 강원도와 영남지방의 사투리로 "길마" 모양을 하여서 질매재로 불려졌다.





우두령에서 무탈한 산행에 기쁘하며 한바탕 소동을 벌리고 난 후 애마에 오른 용마들은 동국제일가람황악산 직지사로 향한다.

직지사는 신라에 불교가 국교로 선포(527년)되기 100여년전에 창건된 가장 오래된 불교의 터전이며 사명대사의 숨결이 서린 것으로 유명하며 고구려의 불교 선도사인 아도화상에 의해 신라 눌지왕 2년(418년)에 창건 되었다.
"직지(直指)"라는 의미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불성을 똑바로 가리켜 깨우치면 부처가 된다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직지에서 따 온 것으로 아도화상이 경북 선산에 도리사를 짓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좋은 절터가 있다하므로 명명하였다는 설과 고려 태조 왕건의 삼국통일에 크게 기여한 능여대사가 중건할 때 자 대신 손으로 쟀다는 설도 있다.
능여조사는 왕건이 팔공산 싸움에서 견훤에게 크게 패하여 겨우 목숨만을 건져 퇴각할 때 짚신 2천 켤레를 전해 주고 견훤이 장자의 반란으로 김제 모악산으로 피신당하자 고려로 망명하는데 기여하여 존경받고 불교 중흥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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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에서 흘린 알콜을 냉/온탕으로 닦아내고 처음 참석한 광수, 종근의 계속된 참석과 31공사 그리고 선/후배님들의 무탈한 산행을 자축하며 진수성찬의 식사와 하산주를 즐긴다. 
즐거운 식사후 고속도로를 달리는 애마에서 용마산악회 선후배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산행때에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진다.

C 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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