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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추억의글

어제 아침을 시작하는 첫 대화였습니다
"오늘 등산 안가요?"
"어어 아직 발도 다 안나사꼬 북한산은 더군다나 험한데
요옹저이나 정제가튼 칭구능 등산할 때 방방 날아 댕기는데 갠히 가가 내가 헤매싸모 칭구들한테 민폐 끼친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마아 안 갈란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고 반나절 지났을 무렵 한마디 불쑥 합디다.
"머리도 복잡해 죽겠고 니 요새 운전 마이 늘었때 내 드라이브 좀 시키도"
제가 좀 뚱한 표정으로
"애들은 어쩌고요? 내일 모레 시험인데".
목소리가 약간 커지면서
"아아덜언 가마 떤지나도 저절로 잘 컨다 아아들 그만 신경쓰고 내 신경써라 내"

"우리 궁민학교 당길 때는 야구나하고 노는기 일인데 요새 아아덜은 머시 할끼 그리 만노?"
옆에 있던 우리 집 작은 애가
"아빠 궁민학교는 어디에 있는 학교에요? 하고 묻길래
우리 집 남자 사투리가 심한 편이라 아이들도 못 알아 들을 때가 있어서 제가 얼른 답했지요

"초등학교를 8~ 9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학교 라고 했어"
"응 그렇구나 "
대답이 끝나자마자 아들 녀석들 재빨리 등 떠밀더군요
컴퓨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깔고는
"엄마 아빠 데이트 많이 하고 천천히 오세요"
컴퓨터 하지말고 책 보고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왔습니다.

광주에서 팔당으로 넘어가는 길이 엄청 밀리데요
차가 거북이 걸음을 하는 동안 갑자기 우리 집 남자
야생화 고들빼기를 보더니, "민들레가 한덜한덜 이뿌게 핐네"
"지금 농담해요?"
"누가? 내가?"

아무리 꽃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민들레를 모른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지요
"민드을레라구요?"
"그라모 민들레 아이가?할미꽃이가? 해바리깅가?
노랑색 저거 민들레아이가?"
노란 꽃은 다 민들레인가요? 전 그냥 말문 닫고 있었지요
'진달랭가, 개나리이강, 봄은 아닌데 개나리는 아이끼고 ,코스모스....'
자신이 살면서 들어봄직한 꽃은 죄다 혼자서 중얼거립디다

그렇게 쉬엄쉬엄 10분을 갔을려나....
저거저거 하얀거 하눌하눌거리능거 이름이 뭐꼬?"
"으응 망초! 생명력이 엄청 강하고 아무데서나 잘 핀다고 개망초라고도 한데요"
"마 망초라 하지 개망초는 뭐꼬? 저 옆에 노루무리한 거는?"
"아아 저거 애기 똥풀"
갑자기 얼굴을 획 돌려 절 쳐다보면서
"똥풀이면 마아 똥풀이지 애기는 만다꼬 가따부친노?"
"그러게 말이에요"
이름을 제가 지었습니까? 그렇지만 여하튼 맞장구는 쳤습니다

비 온 뒤 맑게 개인 하늘과 비를 맞아 초록빛이 더 선명해진
초목들을 보면서 엉금엉금 한 5 분을 달렸습니다
바람에 한들한들 자태를 뽐내고 있던 접시꽃이 우리 집 남자 눈에 들어왔는지
"저어 빨가코 납다그리하이 생긴 거 저거 동백꽃이제? 아아 마따, 동백꽃은 내가 확실히 안다 뭉퉁하게 생깄다."

남편의 엄청난 변화가 왠지 불안해졌습니다.
집 베란다 있는 화초는 모두 상추 또는 쑥갓으로만 보인다고 말한 적도 있고,
아무리 생김새가 다른 꽃이라고 해도 관심이 없어서 도저히 구분이 안 간다고 했는데...
며칠을 술이 오장육부를 헤집어 놓았을 텐데
혹시 어디 아픈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됩디다.

잠시 후 알았습니다.
게시판(경고 홈페이지) 덕분이라는 것을!

"차 안에서 맡는 담배 냄새는 정말 고통스럽고 머리도 아파지니 담배 좀 끄지요 부탁이에요"
"담배 피고 싶을 때 안 피우모 병 난다 병 나는 거 보다 안 난나 좀 차마라"

그래서 제가 그랬죠. 이 사실을 게시판에 올리겠다고 했더니
"아아 알겠다 알겠따 내 담배 꺼께 "

오!! 게시판의 위력이여!

입에 물었던 담배를 내리더니
"내가 갠히 즐겨찾기에 경고홈페이지를 올리가지고 이 고생이네
고거 니가 안봤스머 글 같은 거 안 올리섰꺼 아이가~"

민들레꽃 조차도 모르던 우리 집 남자가 여러 꽃들의 이름을 알고자 노력한 이유는
홈페이지에서 꽃을 접했기 때문일 겁니다
또 한 번 감사 드립니다^^

'게시판이 담배도 끊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 2003년 7월 14일, bara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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