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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모나리자 (Mona Lisa = La Gioconda) 

      가로 53㎝ 세로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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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 Lisa - Mrs. Lisa

La Gioconda - Giocondo의 부인 - 24세 때의 초상화

루브르박물관 2층에 전시되어 있는 모나리자는 6m 앞에서만 감상할 수 있으며

매년 약 800만 명이 관람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된 작품이지만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는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1503년에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미완성인 채 두었다가

1519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fumato 기법을 사용하여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 표현

구도 - 당시의 기본적인 초상화 구도인 피라미드 형태

인물을 배경보다 높이 배치 - 르네상스 시대에는 드문 방식

황금 비율 - 1:1.618 - 얼굴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

황금비 - 1 : 1.618 (1.618 =√5 +1)/2)


**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표 화가

화가, 건축가, 기술자, 과학자, 의학자, 천문학자, 철학자, 음악가

작품 -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1452 토스카나 지방 빈치에서 사생아로 출생

1466 토스카나의 수도 피렌체 이주 - 베로키오 공방 - 그림 배움

1472 피렌체 화가 조합 등록

1476년 베로키오의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에 조력하고, 그 좌단1466-1482 제1의 피렌체 시대

           석죽의 성모, 수태 고지, 베노바 가의 성모

1482-1499 제1의 밀라노 시대

밀라노의 스포르차 귀족 가문의 화가로 초빙

암굴의 성모(1983), 최후의 만찬(1495-98)

1500-1506 제2의 피렌체 시대

프랑스 루이 12세의 밀라노 침입으로 1500년 피렌체로 돌아 옴

성 모자와 성 안나, 1503 모나리자 - 그리기 시작

1506-1513 제2의 밀라노 시대

1506년 밀라노에서 프랑스 왕의 궁정 화가

1516-1519 앙부아즈 시대

프랑스 프랑수아 1세의 초청 - 끌로 뤼세(Clos Lucé) 이주

모나리자, 성 안나와 성 모자 완성

1519 5, 2 사망 - 독신 - 자식 없음

작품 -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성 안나와 성 모자, 암굴의 성모,

세례자 요한, 그리스도의 세례, 수태고지, 리타의 성모


**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모나리자

미술 작품 가운데 가장 비싼 그림은

2005년에 1억400만 달러에 낙찰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이다. 

모나리자는 얼마나 될까?

경매를 전제로 기네스북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모나리자를 기록하고 있다.

뛰어난 미인도 아니고 얼굴이 누렇고 몸매에 비해 배가 굵어서 황달에 걸린 임신한 여성이라는 주장도 있는

중년 여성 모나리자의 작은 그림 한 장이 6억7천만 달러이다.

모나리자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그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가장 유명한 그림임은 틀림없다.

무엇 때문일까? 예술품이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작품에 얽힌 스토리가 많아야 한다.

작가의 일생과 작품의 역사가 파란만장할수록 가치가 올라가고

모진 굴곡과 풍상을 겪어야만 명품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아마 1911년 8월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없었다면

모나리자의 ‘영원한 미소’는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레오 날도 다빈치의 주가도 그렇게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도난당할 당시 모나리자는 중요한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루브르 박물관의 복도에 걸려 있었다.

2년 후 이탈리아 출신 화가로 루브르 박물관에 근무했던 범인이 자수하여

다시 모습을 나타내자 모나리자는 세기의 관심을 모으며 주가가 하늘높이 치솟았다.

그는 모나리자를 그린 사람이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탈리아로 되돌아가야 한다며 훔쳤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중년 여인의 평범한 이 초상화가 언론의 집중을 받으면서

세계 최고의 예술품으로 대접받으면서 세기의 걸작으로 탄생했다.

쳐다보지도 않던 모나리자가 성모상으로 변하고 다빈치도 르네상스의 천재가 되어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가 되었다.

사라졌다가 부활한 성모를 보기 위한 행렬이 줄을 이었고 루브르 박물관의 주가도 덩달아 뛰었다.

이처럼 명품이 되려면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모나리자의 역사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3년에 그리기 시작했으나

미완성인 채 두었다가 1519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빈치는 1516년에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가면서 모나리자를 가지고 갔다.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간 다빈치는 1519년 죽을 때까지

현 다빈치 박물관 자리인 클로루세 저택에서 그림을 그렸다.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왕은 당시 4천 에쿠스를 주고 매입하여 퐁텐블로 궁에 보관했다.

그 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궁전으로 옮겼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자

베르사유궁전이 혁명 지지자들에 의해 소실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모나리자는 루브르궁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자 이 그림을 튈러리 궁전에 있는 그의 침실에 걸어 놓았다.

나폴레옹이 실각한 후 모나리자는 다시 루브르궁으로 돌아갔다.

1870년에 프랑스와 독일 간의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모나리자는 거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옮겨졌다.

나폴레옹이 기거하던 튈러리 궁은 보불전쟁 중 소실됐다.

만약 모나리자가 나폴레옹의 침실에 있었다면 모나리자도 같이 사라졌을 것이다.

보불전쟁이 끝난 후에 루브르궁으로 다시 돌아갔다.

제2차 대전 때 모나리자는 루브르궁에서 원래의 자리인 앙브와즈성으로 피신했다가 록뒤 수도원으로,

다시 몽또반에 있는 잉그레스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프랑스는 문화재를 소중히 보존할 줄 알기 때문에 문화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영토는 침입하되 문화재는 결코 손대지 마라.”고 부탁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모나리자는 이처럼 역사와 같이 했지만 왕이나 실력자의 소장품에 불과했을 뿐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모나리자가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다.

영국의 문필가 페이터가 다빈치에 대한 수필에서

모나리자를 ‘영원한 여성스러움을 갖춘 신비의 화신’이라고 평가한 후

‘신비로운 미소’ 등 여러 가지 찬사를 받게 되었다.

페이터는 모나리자를,

“who is older than the rocks among which she sits

and who has been dead many times and learned the secrets of the grave.”

그녀는 앉아 있는 바위보다도 더 오래되었고, 여러 번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그리고 무덤의 비밀을 알아낸 (영원한 여성의 상징이다.)”라고 표현했다.

페이터가 극찬하자 모나리자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또한 모나리자의 수난이 모나리자의 주가를 뛰게 만들었다.

1956년 괴한이 던진 염산 세례로 그림의 아래 부분이 훼손된 적이 있으며,

그 해 12월 30일에는 Ugo Ungaza Vilegas라는 볼리비아 청년이 돌을 던져

왼쪽 발꿈치 부분의 염료가 떨어져 나갔었다.

그러나 모나리자를

최고의 예술품으로 만든 것은 역시 1911년 8월의 도난사건이었다.

모나리자의 황금비 - 얼굴의 가로와 세로, 코와 눈썹의 길이

턱과 코, 인중과 입술, 입술과 턱의 길이

황금비 - 1 : 1.618 (1.618 =√5 +1)/2)

        

모나리자, 비너스 여신상

경주 석굴암, 부석사 무량수전, 내소사 대웅전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 BC 497 페르시아 파괴

피라미드 꼭지 수선과 변에 이르는 거리

라틴식 십자가, (그리스식 - 가로 세로 동일, 대주교 - 세로 2)

의복 - 상의와 하의의 길이

계란, 호랑나비 날개, 소라, 뿔, 파도, 태풍, 은하수

팔등신 미인 황금비 - 배꼽 위 : 아래, 배꼽 아래 하반신 : 전신

배꼽-어깨 : 어깨-엉덩이, 어깨-코 : 어깨-머리

손가락-팔꿈치 : 손가락-어깨, 발-무릎 : 발-엉덩이 

 

모나리자의 모델은 누구일까?

1516년 프랑스로 간 다빈치는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모나리자를 팔았다.

한때 베르사유 궁전에 보관되기도 했으며 나폴레옹 1세가 자신의 침실로 옮긴 적도 있지만

얼마 후 다시 루브르로 돌아 왔다.

초상화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무렵 남편과 여행을 떠난 조콘다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나리자는 오랜 시간 미완성인 채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어린 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조콘다 부인을 위해 다빈치는 그림을 그릴 때 악사와 광대를 불러

그녀를 즐겁게 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조콘다 부인이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었는지 여부는 명확치 않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린다.

24세의 조콘다 부인과 달리 모나리자는 30~40대의 여인 이미지를 풍긴다.

다빈치는 모델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었는데 모나리자에 대한 기록은 없다.

모나리자의 모델이 다빈치 자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나리자와 다빈치의 자화상을 컴퓨터 그래픽에서 조사하면 골격이 동일하고

특히 눈과 입 주위 근육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들은 모나리자의 신비스런 미소는 다빈치의 얼굴에 여성적 근육을 배치함으로써 생겨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 모든 감정이 다 숨어있는 모나리자의 미소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은 모나리자의 미소이다.

차가우면서도 인자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오묘한 미소는

많은 사람들이 모나리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200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연구팀이 감정 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나리자를 연구한 후

그녀의 미소에 인간의 복합적 감정이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입술의 굴곡, 눈가의 주름 등 얼굴 주요 부위의 움직임을 수치화해 분석하자

표정의 83%는 행복의 감정이었지만 불쾌함이 9%, 두려움 6%, 분노 2%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모나리자는 코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입 근육이 서로 다르다.

왼쪽 입술이 일자로 다물고 있어 무표정하게 느껴지지만 오른쪽은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서

웃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차갑지만 순간적으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인다.

미소의 신비스러움에는 인간의 뇌 구조도 한 몫을 한다.

인간은 피사체의 왼쪽 정보는 우뇌, 오른쪽 정보는 좌뇌가 처리하며

오른손잡이들은 우뇌를 통해 왼쪽 얼굴을 중심으로 전체 표정을 인식한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미소의 신비를 더 극대화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만일 모나리자의 좌우 모두를 웃도록 하거나 무표정하게 한다면 어떨까?

이 경우 표정은 더 또렷해지지만 특유의 신비감은 확연히 떨어진다.

다빈치는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모나리자의 미소를 표현한 것인지 의문이다.

과학자이자 의학자였던 그의 치밀한 면모를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추정이다.

다빈치는 최초로 인체의 장기를 해부한 사람으로 해부학에 조예가 깊었다.

르네상스 초기에 인체의 해부는 금기시되었지만 후에 의학적 용도로 허용되기 시작했다.

다빈치는 해부학을 연구하면서 뼈와 근육의 움직임을 비롯한 많은 부분을 깨달았다.

미술이 과학이라 믿었던 그는 해부학을 토대로 인체를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입술 등의 독특한 표현 때문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모나리자를 연구해 온 학자들은 전시장의 밝기, 그림이 걸린 위치 등에 따라 미소를 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 눈의 망막의 세포들은 사물의 밝기, 위치 등을 코드화해서 분류된 정보를 뇌에 보낸다.

각 조건의 변화에 따라서 미소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한 실험에서 빛이 모나리자의 미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두 군으로 나누어 흰색 화면과 검은색 화면을 30초간 보도록 한 뒤

모나리자를 보여주자 흰 화면 쪽이 미소를 잘 포착하였고

정중앙보다는 측면에서 볼 때 미소가 훨씬 선명히 보인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 모나리자 미스터리의 진실

1. 초안은 생머리가 아니라 머리를 묶은 모습이었다.

2. 모나리자 그림에는 붓 자국을 찾을 수 없다.

3. 2007년 8월에 공개된 모나리자 초안에는 손이 포개지지 않았다.

4. 라파엘이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에는

   기둥이 있으나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에는 기둥이 없다.

   이는액자에 맞추기 위해서 기둥 부분을 잘랐기 때문일 것이다.

5. 눈썹

1. 당시의 미인은 눈썹을 뽑았으므로 모델도 눈썹이 없었다.

2. 눈썹을 그리지 않은 미완성 작품이다.

3. 모나리자를 연구한 엔지니어 파스칼 코트 주장

   - 눈 주위에 미세한 금이 있는데

     이는 큐레이터나 그림 복원가가 부주의하게 닦았다는 증거로써

     청소 중에 지워졌다.

6. 모델

조르지오 바사리 - Lisa Maria Gherardini - 1479 피렌체 출생

16세에 결혼한 상인 Giocondo의 아내

릴리안 슈워츠 - 미국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의 그래픽 컨설턴트

다빈치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킨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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