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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8일. 우루무치의 한 나절 


쿠얼러에서 1박... 이제 돌아가는 길이다. 5시 40분 출발... 새벽 1시 반. 에어컨 시끄러운 소리에 깨서 껐다. 4시경 일어나...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음식이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새벽에 깨어선지 배가 약간 불편하다. ‘사막의 모래산들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명상했다. 사막이 내게 맞는구나. 누구는 원판을, 만다라를... 혹은 화두를 든다는데...


사막에 해가 뜨고 있다. H교수도 사막의 힐링을 받았던 듯하다. ‘사막’이 주는 힘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오갔다. 


무생계, 사막은 ‘습기’가 없다. 습기(濕氣)는 생명의 동력이지만, 그러나 ‘음습’이라는 말처럼, 마음 속에... 어둠으로 피는 부패와 탁한 독소이기도 하다. 불교가 이를 같은 발음 習氣로 발음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앙금’을 남긴다. 이것을 업(業)이라고 한다. 이것은 증폭되거나 자라서, 가지를 뻗고, 다음 행동과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사막은 이 종자, 트라우마와 편견을 ‘말려 버리는’ 역할을 한다. 어째서 그럴 수 있을까.


1) 눈과 귀를 닫는다


우선, 눈과 귀가 닿을 곳이 없다. 맥적이나 돈황에 부처님들이 다들 ‘눈을 반만 뜨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보라. 그리이스의 현자처럼 “눈과 귀는 나쁜 증인이다!” 티벳판 육도 윤회도에는 12연기, 즉 고통을 산출하는 12 개의 연쇄고리에 대해서 적고 있다. 거기 觸 칸에는 끔찍하게도, 눈에 화살이 박힌 형국이 그려져 있다. 좌선을 하고, 명상에 잠기는 것은 ‘원숭이처럼 날뛰는 감각의 천방지축’을 잠재우려는 것이다. 눈을 감아야 진실이 보인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 저당 잡혔던 자신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토굴로 들어가고, 명상이라 눈을 감는다. 사막은 그런 곳이다. 길짐승도 새도 없고, 풀 한포기 없다. 외적 자극과 습기가 없는 푸석한 마른 곳... 모래를 걷다 보면, 어느새 무좀부터 나아 있을 것이다.


2) 모든 것이 평평 평등하다


연암 박지원은 의주를 벗어 요동땅에 들어설 때... 그 광활한 대지를 보고, 뱉은 첫마디가 이랬다. “한바탕 울기 좋구나!” 다들 놀라, 우와 탄성을 지를 때, 그는 ‘울기 좋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실크로드의 풍경이 그랬다. 가끔 혼자 중얼거렸다. “한 바탕 울기 좋구나...” 어린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 소리쳐 으으앵으앵 운다. 사람들은 말한다. 앞으로 겪을 세상, 만만치 않은 세상을 미리 알고 지른 소리라고... 쇼펜하우어는 그랬다. 지상의 가장 큰 축복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다음 축복은 빨리 죽는 것이다. 끔찍한 저주는 영원히 살라는 명령이라고... 연암의 생각은 그러나 달랐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라는 것이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지내다가, 이제 광활한 대지, 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냐. 그 감격으로 저리도 우렁차게 운다는 것이다. 역시 연암답지 않은가.


사막은 ‘분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생존이 코 앞이어서이기도 하고, 앞에서처럼 ‘감각의 먹이’가 없기 때문에 생각할 자료가 없다. 그는 그저 사막앞에 ‘벌거벗고’ 서 있다. 감각의 먹이가 없으면, 판단도 생각도 불가능하다. 잦아든다. 이것은 명상이 노리는 효과와 같다. 생각하지 않을 때, 分別(vikalpa)하지 않을 때, 정신은 역설적으로 고요와 안정을 찾는다. 불교는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비참과 고통은 생각이, 분별이 얽어낸 것이다.” 사막은 삶을 우리 자신에게도 돌려준다. 밖으로 향한 눈을 접고 오직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해 주는 것이다.


사막을 찾는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를 알고 있다. 물론 다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무분별의 막막한 바다, 거기가 여기이다.


3) 그때 사물은 높낮이가 없어진다! 이 인식으로 하여, 잠자고 있던 새 눈 하나가 열린다!!! 인습의 눈이 아닌 반야의 눈이... 붓다의 이마에 박힌 것이 이 ‘제 3의 눈’을 상징하고 있다. 그 눈은 무엇을 볼까나...


평등(平等)은 불교의 전문 용어이다. 공평하게 돈이나 재물을 나누는 것을 뜻하지 않고, 아예 판단을 하지 않는 판단중지를 말한다. 그래서 “참새 다리는 짧고, 황새 다리는 긴 것이 바로 평등이다.”


이 사상을 우주적 지평으로 끌고 간 것이 화엄불교이다. 의상의 <일승법계도>가 전형적이다. 一卽一切多卽一... “하나는 전체에 연루되어 있고, 전체는 부분 속에 침투해 있다!” 사물들 사이에는 높고 낮음, 천함과 귀함... 진실과 거짓 등이 없다. 버려야 할 욕망도 없고, 성취해야 할 진실도 없다. 그저 여기, ‘그 무엇’만이 홀로 밝고 뚜렷할 뿐이다.

어허 중생들은... 영원의 시간 속에서, 잠깐의 시간을 살다 간다. 그렇지만 당신이 없이는, 이 순간이 없이는 우주가 완성되지 않는다. 아파트 평수와 지위의 고하, 그리고 지식의 유무와 상관없는 이 거대한 무도를 화장세계라고 부른다.


화엄경의 마지막 <入法界品>에서 선재 동자는 구도의 여행, 순례를 떠난다. 고승도 있고, 거기 창녀도 있다. 스치는 것들은 다 인생의 스승들이다. 마침내 깨닫고 보니, 놀라와라, 처음 그가 떠난 곳이었다. 다들, 지금 딛고 선 자리가 호시절이다. 달리 피안은 없다.


<화엄경>이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에서 자랐다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사막의 사유가 화엄의 거대한 상상력, 일체의 사유를 피워올렸다고 할 수도 있다. 각설,


아플 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막을 찾고, 아니라면 사막을 명상하면 좋겠다.


초기 이 지역을 탐사한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이 히틀러를 만난 적이 있다. 70대에 건강한 그를 보고 히틀러가 부러워했다. “어찌 그리 건강하오.” “사막에서 살아서 그렇습니다.”


- 버스에서 잠깐 졸았나 보다. “동굴 안에 숙이 녹동색 아라비아 풍 옷을 전신에 걸치고, 벽화를 구경하고 있었다. 베제클리크에서 10원에 사다준 스카프 색깔이었다. 벽화 속 미이라 등 입상이 간산, 주마등으로 스쳐갔던 듯하다.”


- 점심은 투르판으로 가는 고속도로 상의 수타(?)면집이었다. 1시간... 시간은 좀 걸렸다. 가이드 두 분이 무슨 실랑이를 했던 것같다. 소스는 기름에 볶은 고기와 채소... 젓가락을 대지 않고, 아침에 받은 찐 계란 하나와 과일을 먹었다. 사막이다. “적게 먹어도 될 것이다.”


- 차 안에서 흔들리며 사진을 찍었다. 염호를 지나고, 풍력 발전 단지를 지났다. 2시 반 무렵 우루무치에 진입했다. 신장 박물관에 도착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밧데리가 얼마 없어서, 사진부터 열심히 찍었다. 1층은 주변의 소수 민족의 생활 공간과 의복, 악기, 생활용품 등이었다. 신기했지만, ‘풍물’에 그칠 수 있다. 공감을 위해서는 그 공간 속에서 살아보거나, 아니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박물관은 역시 ‘박제’만 있는 곳인가. 그래서 여행객들이 내심(?) 박물관을 싫어하는지 모른다. 이야기는 커녕, 플레이트에 설명도 거의 없다.


2층은 소하묘에서 발견된 미이라들이다. 미인의 얼굴 하나를 복원해 놓았는데, 서역이 서구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너무 건조해서, 천년 너머를 살아, 여기 전시된 것은, 당자들의 축복일까, 수치일까, 저주일까...

1층 로비에서 큰 서역의 입체 지도를 서교수님과 함께 들여다 보며 몽고메리나 패튼처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최교수님이 대표로 술을 한 보따리 사 왔다. 일찍 나와 박물관 앞 벤치에서 기다렸다. 버스는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 저녁은 격식이 있었다. 누가 “마지막 만찬!”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실크로드에서의...”라고 앞에 붙였다. (*소심하기도 하지...) 동파육 슬라이스(?)와 족발요리가 내 입맛에는 맞았다. 족발요리는 장충동보다 더 뛰어났다. 나중에 들으니, 이 집만의 비법이라고 한다. 식당 이름은 잊었고, 버스 안에서 번지수 플레이트는 사진에 담았다. 혹시 모를 일... 죽기 전에 다시 찾는 일일 있을지도...


- 공항으로 이동. 짐을 부치고, 남은 라면 두어개와 초콜릿을 가이드에게 건네주었다. 약간 겸연쩍어 한다.

서안행 비행기는 딜레이... 1시간 반을 더 기다렸고, 사람들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 서안 공항에서 바로 인천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했다. 전체 일정을 동행한 가이드는 그런 얘기까지 다 들어준다. 물론, 그 시간에 호텔이 예약을 취소해줄리 만무하다.


아마도 비행기가 10시와 10시 반 두 편의 승객들을 몰아서 큰 비행기로 띄운게 아닐까 하는 ‘잔머리 추측’도 해 보았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비행기는 컸고, 승객이 거의 찼다.

- 한 밤중에 다른 현지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중국에 관한 몇 가지 사항을 설파했다. 중국의 결혼 문화... 핵심은 집이 아니라 ‘차’라네... 몇 대를, 어느 수준의 고급차를 동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네... 수십대가 신부집으로 향한다. 그러다가 어느 고위관료는 조사를 받아, 급전직하 추락하기도 한다니, 역시 사람 눈에 너무 띄는 것은 자충수라... 혼자, 웃으면서 호텔에 도착했다.


아침에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욕조에 물을 받아, 피곤한 몸을 뉘었다. 취침...


- 오늘 서안에서 인천으로 간다. 오는 길일까, 아님 가는 길일까? 사르트르는 파리의 라틴 거리에서 차를 마시다가, 비에 쫓겨 들어오는 일군의 사람들을 보고 뇌까린다. “탁자 있는 이곳이 안인가, 밖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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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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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고 나서, 월요일 깨고 나니, 문자가 와 있었다. 칸사이대학의 A교수가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행중 컨펌이 없어서 무산된줄 알았더니... 부랴부랴 차를 몰고 연구원으로 향했다. 아하, 다시 ‘학술 인생’으로 돌아간 것을 실감했다.


가는 길에, 치과에 들렀다. 의사는 썩고 있던 사랑니 하나를 그예 빼자고 했다. 오랜만의 발치! 입을 벌리고 있자니, 누란이나 소하묘의 미이라의 이빨이 된듯한 데자뷔, 에 잠깐 빠졌다.


그냥 두면, 여행의 느낌과 기록은 휘발한다. 그동안의 노트를 보며,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나중, 사진을 보면서 이 리뷰를 참고해 보면 새록 생생할 듯해서이다. 이빨은 아직도 욱신거린다. 


- 실크로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이번 길엔...


쿠차에서 돌아왔지만, 현장은 서쪽으로 악수를 지나, 카슈가르로 해서,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 길을 따라 파미르 고원을 넘어... 우즈벡, 파키스탄을 지나, 인도로 들어가 볼 수 있을까... 사막의 대상들처럼, 걸어서, 낙타를 타고, 눈덮인 산록을 지나기는 어렵겠지... 수십명이 죽고, 발가락이 썩어 들어갔다는데...


우루무치 공항에서... 작은 키오스크에서, 서쪽 관문인 카슈가르의 문화와 종교에 관한 작은 책을 하나 샀다. 우선, 그것으로 여행의 미진한 허기를 달랠 참이다. 그리고, 돈황과 중앙아시아의 문화와 교역, 그리고 불교미술에 대해, 눈 하나를 열고, 본격 대면할 생각을 하고 있다. 건투, 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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