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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1.

悲情城市라는 허우샤오센(侯孝賢)의 영화를 기억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 이건 조폭 영화가 아니다. ‘非情’이라는 느와르적 개념은 일본어에서 왔다. ‘悲情’은 우리가 안 쓰는 말인데, 중국어로 그냥, ‘슬픈’이란 뜻이다. 悲情城市는 “슬픈 도시”라는 뜻... 대만의 운명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고, 우선 사진 한 두 장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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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측에서 그 영화의 무대인 지우펀(九分)에 안내를 해 준다길래, 대만의 유학생에게 이 영화를 부탁했다. 다시 한번 보고 갈 작정이었다.

 

거기 끼워 온 영화가 한편 더 있었다. 이름도 특이하지.. “시디크 발레...” 이게 무엇이지... 이 영화가 한달의 대만의 풍광을 바꾸어 놓을 줄은 몰랐다. 

 

장장 네 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나는 정말이지, 시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대만의 원주민 고산족 시디크 족의 항일 자폭을 다룬 영화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NSY7H-XtSL8

 

대만은 특이한 역사와 인종 구성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은 원주민들의 터전이었다. 주요 부족은 열 몇개, 평지의 平埔族, 그리고 산 속의 高砂族, 高山族이 있다. 1620년대 네덜란드가 “대항해의 시대”에 자바의 바타비아를 점령하고, 이어 대만의 남쪽 타이난(臺南)에 자리를 잡았다. (*타이완이라는 말은 원주민들이 이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40년대에는 북쪽의 스페인을 몰아내고 지배권을 확립한다. 동인도 회사는 무역회사였지만, 군사와 외교를 같이 묶어 다녔다. 그것도 잠깐, 1660년 명의 장군 정성공이 대 만주족의 기지로 대만을 노렸다. 지금은 安平古堡라고 불리는 질란디아 성을 9개월에 걸쳐 공략해서, 기어이 총독 코에트의 항복을 받아낸다. 개인 물품만 소장하고, 조용히 떠날 수 있게 한 협정을 지켰다.

 

그러나 결국 대만은 청나라의 수중에 떨어진다. 그리고 200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민족의 유입은 많아졌고, 원주민들과의 교역도 확대되고, 유교를 통한 교화도 활발해졌다. 청대의 한문 도서에는 원주민의 생활을 그린 그림과 함께, 문화적 기록들도 상당수 집필되었다.1895년 청의 지배가 끝나고, 대만은 일본 최초의 식민지로 떨어진다. 

 

그저께 대만을 떠나기 전날, 오래된 일본식 다다미 식당으로 나를 초대한 대만대 역사학과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청일전쟁은 한국땅에서 벌어졌는데, 왜 대만이 일본에 할양되었는지 모르겠네.."  


시디크 발레는 바로 이 장면에서 시작한다. 늙은 청나라가 일본 군함 위에서 대만을 일본에게 넘기고 작은 쪽배로 떠나는 굴욕적인 장면으로...


2.

일본은 평지를 접수하고, 점차 산쪽으로 진출해 나갔다. 오랜 조상의 관습과 규율로 살아오던 고산의 원주민들은 처음 獵首, 일본인들의 목을 땄지만, 신식 무기와 훈련된 군인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산을 접수한 그들은 학교와 병원, 그리고 경찰서를 지어, 그들을 통제하고, 훈육시켜 나갔다. 추장들, 대표들은 몰아서 일본 시찰을 시켜 주었다. “너희들은 우리의 힘을 당할 수 없다”는 경고였다.

 

대만 중심부의 가장 사나운 부족 가운데 하나가 시디크 seediq 塞德克 족이었다. 지도자는 “모나 루도(莫那魯道)”라는 사나이...

 

그리고, 30여년이 지나, 1930년 10월... 모나 루도는 자기 부족과 이웃 부족들을 동원하여, 근처의 일본인들이 모두 모이는 “운동회날” 아침을 기해, 급습을 한다. 200명 가까운 일본인들을 몰살시키다 시피 했다. ‘霧社’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부른다. 일본은 당연 무자비한 보복으로 나섰다. 일주일 후, 부족들은 거의 몰살당했고, 모나 루도는 1주일 후 근처의 동굴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는 이 저항이 “무모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그랬을까. 전 부족의 죽음을 담보로... 여기가 감상의 키포인트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e-fbH6i_uyw

 

3.

대만의 고산은 비가 많고, 늘 안개가 낀다. 그래서 ‘霧社(우셔)’라고 불렀을 것이다. (*社는 집단 혹은 결사체를 가리킨다. 社會가 거기서 왔다. 영어의 Society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생 많이 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상한 번역이다. “죽은 시인의 클럽” 정도가 적절하다.)

 

감독은 魏德聖은 아직 젊다. 오랜 기획의 산물이라고 했다. 돈이 없어, “海角 7號”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그 흥행 수입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무려 200억 정도가 투입되었다.

 

유투브에서 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평준화된 삶, 무엇이든 쓰고 버려지는 세상에서,,, 영웅주의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대만을, 그 정체성과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고 담담히 말합디다... "그렇다고 정성공을 세울 수는 없지 않으냐"...

대만에 인물이 있었구나... 우리는, 그럼 무슨 영화를 만들 것인가? 너무 짜잘하지 않은가. 그리고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그리고 너무 자본적이지 않은가. "조폭 영화"나 "코메디"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문명’을 고민하는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일상 문화의 깊이를 임권택이 잡아내고는 있으나, 박력과 울림이 부족하고... "가족" 코드는 한류의 장기이긴 하나... 역시 중심이... 자장 혹은 파장이 약하지 않은가.

 

4.

사건은, 일본의 지배가 한 세대가 더 지난 시점이다. 원주민 출신으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순사가 된 젊은이가 묻는다. “일본이 왜 그토록 싫으십니까? 학교에서 가르치고, 병원에서 치료해주는데요...경찰은 질서도 잡아주고”

 

모나 루도는 묻는다. “너는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 조상들이 있는 저 무지개 너머로 가는가, 아니면 일본의 신들이 있는 곳인가?”

 

영화 속에, 피가 튈 때마다, 애잔하게, 낮게 깔리는 노래가 있다. “아무이 술루 阿穆依 蘇路‘ 라고 한다. 그녀는 시디크 족이 아니라, 아타이얄 泰雅族 출신이다. 자신이 없어 녹음 날까지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다... 한 번에 녹음을 끝냈다... 중간에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다가, 마치고 나서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그 정조를 노래에서 느낄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kgdvHqHpq9Q

 

 

5.

원주민들은 가장 “문명화된” 종족이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유교가 꿈꾸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그들이 미리 구현하고 있다.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에 가서, 하느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고 경탄할 정도였다. 그들은 서로를 세심하게 배려한다. 물건을 주면, 다들 나누어 가진다. 바지 한 벌을 주면, 각자 찢어 가지기 때문에 사람 수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밥을 먹을 때는, 숲 전체가 울릴 정도로, “누구, 먹을 사람 없느냐”고 외친다. 문명 사회에는 거지가 있다는 소릴 듣고, 전혀 이해가 안된다고 말한다. “가족이 없나요, 친구도 없고... 부족 이웃들이 있을 것 아니에요?”

 

대만의 원주민들에게는 Gaya라는 규율이 지배한다. 그들에게 없는 것은, ‘비축’이라고 말한다. 자본이든, 저축이든...

 

영화는 둔중하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

 

6.

 대만의 고궁박물관은 유명하다. 국민당이 대륙에서 쫓길 때, 중국의 문화적 보물을 거의 싣고 왔다.

 

그런데, 바로 그 맞은 편에 <원주민 박물관>이 있는 줄은 잘 모른다. 같이 티켓을 끊으면 할인을 해 주는데도...

 

어느 하루, 혼자서, 서너 시간을 둘러보았다.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사진은 못 찍게 했다. 남자는 사냥과 전쟁, 여자는 직조와 밭일로 분화되어 있었다. 타피스트리의 정교함이 놀라왔고, 삼베를 짜는 방식은 우리랑 거의 꼭 같았다.

 

질그릇은 유약이 없었고, 석기시대의 기풍이었다. ‘축제’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화려함이라니... 그들의 나라가 여기 속해 있지 않고, 오랜 조상들이 사는 무지개 너머를 향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여기서 한 가지...

 

아름답다는 한자는 ‘美’이다. A.D. 전후 최초의 한자 사전인 說文解字는 ‘실용적’으로 해석했다. 美 (甘也. 從羊大. 羊在六畜主給膳也. 美與善同意.) 글자 형태 대로, 양이 크고 살찐 것을 상징했다는 것이다. 善과 美는 한 짝이라고 했다. 하긴, 양귀비와 맏며느리감은 애를 잘 낳고, 집안 일을 잘 하게 생긴 몸매를 선호했다.


갑골문 - 고궁 도록.JPG


그런데, 아닌 것을... 아득한 甲骨文이 확실히 알려준다. 거기 羊은 양의 형상이 아니고, 원주민의 화려한 복장, 혹은 샤만의 복장을 가리킨다. <아름다움>은 애초부터 실용적이 아니고, <초월적>인 것이었음을 알겠다.


7.

환영식에서 태극권을 한다는 중문과 교수는 자신도 늘 ‘화두’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뭐냐고 묻자, “念書是誰” “이렇게 책을 읽고 있는 자, 누구인가”라고 했다. 나보고 “너는 무슨 화두를 들고 있느냐”고 묻길래 나는 슬쩍 웃어주었다.


모나 루도는 내게 묻는다. "너의 사냥터는 어디인가?" 


돌아오니, 문명의 소리들이 낭자하다. 인간세, 정치부터, 짜잘한 이야기들이 벌떼처럼 웅웅거린다. 문명의 문제는 적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 아닐까.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펄쩍 뛰지만, 냄비에 넣고 서서히 불을 올리면 그런가(?)하다가 삶겨 죽는다고 한다. 적이 분명치 않다는 것, 예전에는 국왕이든, 추수를 기다리는 밭을 노리는 이웃 부족이든, 식민지의 총독이든, 분명했다. 지금은 조직적이고, 익명적이며, 체계적이라서, "저항"이 불가능하다. 그게 비극 중의 비극 아닐까.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오케스트라, 합창으로... 

 

"라케 무 세덱, 단 카이 다스다..."  아이들아, 보거라, 산 머리에 걸린, 저기 저 무지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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