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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2011.07.15 14:33

박종규 조회 수:217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는 끈질긴 장마가 지속되고 있다.
곧 장마가 끝이 나면 이제는 폭염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겠지요.
우리 집 막내는 불과 얼마 전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던 것 같은데
벌써 여름방학을 하였다. 세월 참 잘 갑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늘 시간에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허둥지둥 출근길에 올라 어영부영 점심을 맞이하고
일과가 마치면 곧 여기 저기 기웃거리거나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왜 우리는 시간에 쫓기듯이 살고 있을까?
어차피 유한한 인생이라 무한한 시간에 조종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시간’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됩니까?
 
성인이라고 불리던 중세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란 아무도 내게 묻는 자가 없을 때에는 아는 것 같다가도,
막상 묻는 자가 있어서 그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시간이 존재하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는 있지만
막상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것 같다.
 
시간에는 흔히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조가 있다고 여기고 있는데,
전통적인 서양철학에서는 시간의 세가지 계기, 즉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의 마음은 기억을 통하여 과거를 인식하고,
기대를 하는 가운데 미래를 예상하고 지금 현재를 지각하고 있다고 한다.
 
가령 감동스런 음악을 듣고 있다고 가정하면,
현재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현재)은 이전의 음조를 기억(과거)하고
앞으로 도래할 음조를 기대(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아침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제도 정거장에 버스가 정차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곧 버스가 정차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통적 시간론은 기억, 지각 그리고 기대를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정립되었으므로 무엇인가를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고까지 이야기 한다.
 
여기에 대하여 레비나스라는 철학자는 <시간과 타자>라는 글에서
전통적인 견해와는 달리,
“현재 안에서는 미래의 등가물을 절대 발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거머쥘 수 있는 가능성이 전적으로 결여 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대(미래)가 철저하게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미래)가 좌절되는 경험으로 조우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미래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미래란 타자와의 조우는 우리 인간에게 하나의 축복이라고 한다.
 
동양의 성인 <장자>는 더 나아가서
“無古今”
“시간을 없애라”고까지 하는데 “미리 기대를 좌절시키라!”라는 의미이다.
시간의식을 제거한다는 것은 어떤 기억도 담아두지 않고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것, 나아가 기억과 기대에 의존하는 지각도 하지 않는다
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간의식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타자(미래)와 진정으로 소통할 준비가 된다고
한다.
 
한편, 신라시대 의상대사는 법성게에서
無量遠劫卽一念(무량원겁즉일념)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
 
무한한 세월이 지금 이 한순간에 녹아있고,
이 한 순간은 또한 무한한 세월의 씨앗으로 들어 있다고 한다.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이나, 일본의 3.11 대지진을 생각해 보자
꼼꼼히 생각해 보면 일본의 대지진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무려 지구의 나이 약 50억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 아니겠는가?
 
생각을 더 확장해보면 일본 대지진 발생하기까지는
빅뱅이래로 우주의 나이 약 170억년이 필요하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하여 불교에서는 과거, 미래가 지금 이 한 순간에 다 들어있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순간 순간 찰라 생멸하는 연기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항상 우리의 마음은 과거로 되돌아가지도 말고, 
오지 않는 미래에 가 있지도 말고,
지금 여기에서 자신에게 향하라고 가르친다.
불교의 시간 개념은 의미상으로는 장자의 ‘無古今’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지향하는 바는 차이가 있다.
 
이제 시간에 지배당하지 말고 시간을 지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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