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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고 31회 동기회

경남고등학교 제31회 동기회

野生 1별 3산

2009.08.26 16:16

안중수 조회 수:460

지난 대간길은 구름위에 있는 활짝 개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세계에 빠져 들어 구름은 구름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나는 나대로 흐르면서 도솔천의 세계를 접하였고 남북을 오르내리면서 횡포를 부리는 장마전선의 거동을 숨 죽여 바라보며 약 4주동안 휴지기에 들어간다.
이번 대간길은 도솔봉을 뛰어 넘어 월악산 구간인 저수령에서 하늘재까지로 도상으로 약 32키로 정도로서 이틀동안의 산행계획을 하나 장마후 있을 폭염을 고려할 때 만만치 않을 것이라 예상하며 기상정보에 촉각을 세운다.
오랜만의 1박 3일의 대간길을 즐기기 위해 개나리봇짐에 이것저것 쑤셔 넣고 똑딱이를 앞 세워 출발장소에 달려 가니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고 정겨운 안부인사를 나눈다.

저수령에서 차갓재
용마를 태운 우리의 애마는 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에서 한차례 숨고르기 후 단양IC를 빠져  나와 지방도927호선을 따라 꾸불꾸불한 어둠을 헤쳐 달려 오늘의 들머리인 저수령에 도착한다.


低首嶺
저수령은 지금의 도로(지방도927호선)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여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으로 불리워졌다고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銀豊谷)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外敵)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저수령은 경북 예천군(상리면)과 충북 단양군(대강면)의 경계지점이지만 오름을 바로 시작하자마자 경북 문경시(동로면)과 3개의 시군이 접촉을 하는 장구재에서 부터는 문경시계 속으로만 흡수되며 예천군과는 작별을 하고 진행을 하다가 한참 지난 후에야 다시 단양군과 만나게 된다.



어둠을 깨우는 이마에 붙인 램프 빛을 따라 신속하게 움직여 산행준비를 마치고 대장님의 주의사항을 귀담아 듣고 전의를 다지는 구호와 함께 대간길의 자연속으로 뛰어 든다.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어둠을 밝히면서 고도를 높여가니 등로 주변에 잠자고 있던 어둠을 추종하는 나방 등 날벌레들이 빛에 놀라 숨쉬기가 어렵고 앞을 못 볼 정도로 온몸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몇차례 날벌레들을 목구멍으로 넘겨 가면서 오름을 하고 우측의 대간길을 버리고 직진하여  부산에 있는  같은 이름인 용두산의 산세 등을 정밀탐사하기 위해 헬기장에서 한차례 숨고르기를 하고 난 후  발걸음을 움직여 용두산(980m)의 정상석과 산세 등을 확인하고 약 40여분 만에 서쪽으로 향하는 대간길로 접어 든다.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 본능과 미심쩍은 것에 대한 확인 본능은 생활에 있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로서 오늘산행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어둠속에 묻혀 있는 비교적 평탄한 마루금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여 헬기장을 지나고 남북으로 난 임도길로 되어 있는 장구재(860m)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날벌레들의 성기신 공격을 피하면서 심한 가풀막을 힘겹게 고도를 높이고 온몸에 흐르는 땀으로 등로를 젖시가면 발걸음을 옮겨 나아가니 문복대에 다달아 숨고르기와 불꽃놀이를 한다.
문복대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문봉재라 기록되어 있으나 산 아래 마을인 석항리 사람들이  문복대라 부르는데서 유래했다고 보이며 원래 이름인 운장산이다.
※ 대(臺)는 돈대를 뜻하는 것으로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대를 설치하고 적들의 칩입을 감시하고 방어하는 군사시설물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문복대도 돈대와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역사적으로 이곳은 삼국시대 때부터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대였던 곳이다. 
 

숨고르기와 간식을 즐기고 난 후 주변이 칠흑같이 캄캄한 내림길을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내딛으며 고도를 낮추니 들목재에 도착하고



가벼운 오름을 하고 난 후 내림을 하니 문복대 안내간판을 보고 국도59호선 도로변에  정자와 대간석이 있는 벌재에 다다르고


  




생태통로를 만들어 줄 것을 시위하는 듯이 차바퀴에 치인 뱀이 누워 있는 도로를 건너 대간길 주변으로 흐르는 개울로는 처음이라 생각되는 감시초소 옆으로 흐르는 개울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흐르는 땀을 식힌다.



벌재
이 고개의 남쪽 마을이 문경시 동로면의 적성리인데 한자표기로 붉은 "赤"을 사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적재 → 붉은 재'를 이 고장 말로 '벌재'라 한 것이라고 추정을 한다

충분한 휴식후 심한 가풀막의 마루금을 따라 고도를 높이면서 발걸음을 힘겹게 내딛으니 등 뒤에서 여명이 서서히 어둠을 물리치고 있었으며 928봉을 지나 내림길을 하여 전망대에서 일망무애의 주변경관을 조망한 후  내림길을 재촉하여 폐백이재에 도착하여 숨고르기를 한다.






오랜만에 보는 태양의 햇살이 서서히 강렬해짐을 피부로 느끼면서 마루금을 밟으며 고도를 높이고 좌측 아래에 펼쳐진 절경과 치마를 입은 듯한 암장인 치마바위의 수려함을 배경으로 멋도 부려 보고 주변 풍광을 즐기면서 가벼운 발걸음을 한다.



신불산 칼바위와 같은 암릉구간의 암장 꼭대기를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움직여만 하였고 몇차례의 두발 두손으로 기어야만 하였으나 등로 주변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 따가운 햇살을 막고 간혹 불어 주는 신선한 바람은  더워진 몸을 식혀 주어 피로를 가시게 하였다.
생활속에서 찌들고 저린 육체와 정신을 자연의 숲으로 정화시키고 새로운 내일을 도전하는 산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베타 엔돌핀의 분출 그리고 신선한 쾌감은 서서히 대간중독증에 걸려 감을 암시하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암릉구간을 어렵게 지나 가벼운 오르내림후 황장재를 만나고 앞에 우뚝 서 있는 감투봉을 바라보며 흐르는 땀을 마루금에 쏟아 부으면서 너덜구간과 잡목구간을 경괘한 발걸음으로 통과한다.
 심한 가풀막을 로프에 잡고 올라 서는 힘겨운 걸음을 하고 골산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암장 꼭대기를 밟고 지난 후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등로에 쪼그리고 앉아 아점식사를 한다.







막걸리 한말과 진수성찬을 즐긴 배부른 베짱이들의 즐거운 노래소리가 황장산 정상 아래에서 메아리치고 몇분간의 오수를 즐긴 후 가벼운 오름을 하니 조그만한 공터에 정상석과 돌무덤이 황장산 정상에 올라 선다.
黃腸山
산 이름이 그렇하듯 옛날 춘양목과 쌍벽을 이루던 황장목이 많이 났던 곳이다.
황장목(왕실의 건축자재로 쓰였던 춘양목 등과 함께 나라에서 보호구역으로정하여 관리하였다)이 생산되는 산이라 하여 황장산이라 하는데 나라에서 황장목 생산지로 봉하여 황장봉산이라 부르다 후에 황장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주변경관을 즐기고 증명사진을 박고 난 후 내림을 하여 좌측으로 깍아내리는 절벽위의 위험한 바위에 붙어 있는 로프에 카르비나(?), 카라멜(?)으로 감싸고 로프에 붙어 있는 잠자리 처럼 여유롭게 지나  다시 수직암장에 메여 있는 로프에 몸을 의지하여 내려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금후 도착한 멧등바위에서 그늘이 없이 뙤약볕에 앉아 레펠에 대한 대장님의 강의를  열씨미 듣고 주변경관을 즐기면서 멧등바위를 내려 가벼운 간식과 더불어 숨고르기를 한 후



내림길을 하니 앞선 선두가 직진을 하는데 큰 바위가 있는 등로 좌측 아래 나무에 시그널이 많이 붙어 있어 정지시키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내림길을 하니  앞선 용마들이 낙엽송 아래 빈 공터에서 쉬고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앞서 간 탐구 본능이 강한 찍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물어 보았더니  아직도 내려 오지 않았다고 하여 기다리기로 하고 한참 동안 기다리나 오지 않아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여 가벼운 오르내림을 하며 작은차갓재를 지나 차갓재에 도착한다.
차갓재에는 너른 공터에 지리여장군과 백두대장군 장승 사이에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총 734.65Km중에
 367.325Km인 중간지점 표지석이  있었으며 잠시 휴식을 하는 내내 자연생태 탐방에 나선 찍사의 탐구 본능에 걱정을 해 본다.



잠시 휴식후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오늘 하루 머물을 숙소가 있는 안생달로 향해 하산을 하여 계곡물을 막아 만들어 놓은 풀장에서 알탕을 즐기며 흐르는 계곡물에 담겨진 수박과 맥주를 즐기며 지친 몸의 피로를 풀어 본다.
그런 사이에 자연생태 탐방을 마치고 도착한 생태조사팀이 도착하여 탐방 성과에 대한 보고를 하고 이번 탐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하산주를 즐긴다. 

저녁식사후 자그만한 술상에 많은 음식들을 즐기며 오늘 산행에서 있었던 상황들과 내일 있을  산행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고 하늘에  박혀 있는 별을 헤아리며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른다.  
 

하늘재에서 차갓재



산속의 차가운 바깥 새벽공기에 일어나 보니 새벽 두시였고 어제 많은 별을 봐서 그런지 머리가 띵하고 많이 걸어서 인지 아랬도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추스려 산행준비를 하니 기상시간인 세시가 되자 숙소에서 주무시던 용마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산행준비에 들어 간다.
어느새 숙소에 도착해 있는 애마에 올라 앉은 용마들은 빵과 커피 한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동안에 애마는 꼬불꼬불한 도로를 달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하늘재에 도착한다.
이마에 붙어 있는 랜턴 빛을 따라 신속한 움직임으로 산행준비를 마치고 대장님의 주의사항을 듣고 힘찬 구호와 함께 현세세계에서 미륵세계로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겨 들어 간다.
하늘재
백두대간 이화령과 차갓재 사이에 자리한 고갯길로서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한다.
하늘재 주변에 있는 동네 이름은 관음리와 미륵리로서 관음은 현세구복의 부처이고, 미륵은 미래에 올 부처를 가르키므로 하늘재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라 할 수 있다.
또한 하늘재는 역사가 기록하는 가장 오래된 고갯길로서 김부식이 집필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하늘재와 관련된 기록이 보이며  하늘재의 본래 이름은 계립령이다.
신라본기에는 아달라왕 3년(156년) 여름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전하며 영주와 단양을 잇는 죽령 옛길이 아달라왕 5년에 개척됐으니  그보다도 2년 앞서 생긴 셈이다.
하늘재를 넘어 북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와 이를 견제하던 고구려와 백제가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 이 고개다.
고려시대에 이 길은 대원령이라 불렸으며 미륵대원에서 따온 이름으로 고갯길 아래에 미륵사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군사적으로나 사람들의 내왕길로나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하늘재는 문경새재가 조선 태종 14년(1414년) 만들어지면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으나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국가지정명승지에 이름을 올리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등로 주변에 있는 도솔천의 감로수를 마시고 암장으로 이루어진 심한 가풀막을 조심스런 발걸음을 움직이나  두발 정도 움직이면 한번 서야 할 정도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지체가 계속되고 새벽공기가 비교적 선선함에도 불구하고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베어 나오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지체를 반복하며 어둠을 뚫고 네발로 기면서 하늘로 다가 갈려고 용을 써며 고도를  높여 보지만 그냥 그자리에 있는 같아 역시 하늘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삼베 조각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비집고 나와 힘겨운 발걸음을 하고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암장을 로프에 몸을 의지하며 올라서고



어둠을 물릴치려는 여명이 서서히 밝아 오는가 싶을 즈음에 너른 공터에 정상석과 돌무덤이 있는 포암산 정상에 다다르고 동쪽에 구름 사이에서 타오르는 벌건 불을 보면서 일망무애의 주변경관을 즐기며 숨고르기와 불꽃놀이에 들어 간다.  
布巖山
베바우산이라고 불리던 산으로 하늘재에서 보면 동쪽의 사면이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허연 삼베(布) 같은 천을 두른 산이란 뜻을 지녔는데 허연 삼베는 바위 절벽을 의미한다. '베바우산'으로 우리 고유어를 한자어로 풀어 쓴 것이다.
이처럼 험한 바위산인 포암산은 부근의 월악산, 주흘산, 신선봉 등과 더불어 '조령 5악'으로 불리는데, 산세가 험한 대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며 아름드리 노송군락과 벼랑 위에 선 고사목들이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





주변 풍광을 즐기고 난 후 조심스런 내림을 하며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음껏 만끽하고 주변 나무의 가지 사이로 깨어진 햇살을 쬐며 한적하고 싱그런 오솔길 같은 대간 마루금을 힘차게 밟으며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나아간다.



나무와 풀과 구름과 비와 바위와 함께 벌레들과 새들이 조화롭게 숲을 이루고 삶을 살아 가고 있는 자연의 기를 받으며 편안하게 한걸음한걸음 발걸음을 움직여 만수봉 갈림길인 능선 삼거리 너른 공터에 다달아 숨고르기를 한다.

후미를 올 때까지 휴식을 취하고 난 후 깔딱고개를 단숨에 차고 올라 마골치를 지나고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반복되는 오르내림을 하면서 가끔씩 불어 오는 바람에 몸을 식히나 이미 온 몸에는 땀투성이가 되었고 서서히 몸은 지쳐가기 시작하였다.
우측으로 보이는 풍광을 조망하며 마루금을 따라 뙤약볕과 나무그늘을 왔다갔다 하고 우거진 나무 숲속에서 나는 올해 처음으로 듣는 매미소리를 위안으로 삼으며 한차례의 휴식과 간단한 간식을 한 후 계속 걸음을 재촉하여 가벼운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너덜구간을 지나고 위험한 암장에 메여 있는 로프를 잡고
통과할 때에는 상당한 시간을 지체할 수 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벼락바위봉을 통과한 후 재빠른 걸음을 움직이나 속도는 나지 않고 서서히 배고픔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고 몸은 지쳐가고 있었다.
이틀 계속되는 산행과 더워진 날씨로 인해 피로가 배가되어 다리의 움직임은 더디어 지고 아침식사를 하지 못해 허기가 생겨 한차례의 휴식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잡목지대를 지나 오름을 하면서 마침내  개나리봇짐을 열어 등로에 앉아 간식을 먹고 다시 힘을 내어 힘겹게 오름을 하고 안부에서 먼저 온 일행들과 휴식을 취한다.




부리기재에서 식사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어 부리기재로 향하는 조그만 봉우리를 넘자하니 증말로 부리키게 하였으며 먼저 온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어 등로에 앉아 식사를 하였고 우리의 찍사가 힘들게 지고 온 막걸리는 부리킨 마음을 가라 앉히게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반찬없이 물에 말아 먹은 식사와 막걸리의 힘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거의 3단 그린을 방불케 하는 가풀막을 힘차게 올라 잡목으로 조망이 그리 좋지 않은 공터에 정상석이 있는 대미산 정상에 다다른다.
黛眉山(1,115m)
대미산은 문경시를 지나는 백두대간상에 위치한 큰 산으로 문경지역 모든 산의 주맥(主脈)이다.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와 동로면 생달리에 속한 대미산은 조선 영.정조 때 발간된 문경현지(聞慶縣誌)에는 대미산을 문경제산지조(聞慶諸山之祖)라 적고 있다.
 대미산에서부터 문경구간의 백두대간이 시작된다는 의미와 함께 문경의 산들 중에서 높이로도 가장 높다는 뜻이다.
산경표와 문경현지에 적힌 지명은 黛眉山(대미산) 즉, 검은 눈썹의 산이다.
문경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선생은 大美山으로 고쳐 불렀다 한다.

후미의 도착과 동시에 단체사진을 박고 뜨거워진 햇살을 피해 조금 내려와 그늘에서 숨고르기를 하였다.
우리의 호프인 창동군이 검푸른 눈썹 아래에 자리잡은 세상 제일의 눈물이 쏟아진다는  눈물샘으로 물을 보충하러 간 사이에 더 내림을 하여 공터에서 앉아 눈물샘의 환상적인 눈물 맛을 보며 피곤함을 달래며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몸을 일으켜 문수봉 삼거리 이정목이 있는 곳에 다달아 증명사진을 박고 우측으로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으며 어제 자연생태탐방으로 접하지 못한 구간을 향해 달려가는 원욱군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고 도전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 새목재를 통과하고 비교적 완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너른 공터가 있는 낙엽송 밑에서 간식을 즐기며 지친 몸을 달래며 숨고르기를 한다.
뙤약볕을 막아 주는 원시림 속으로 난 등로를 따라 계속되는 오르내림을 반복하여  열씨미 걸음을 움직여 보지만 날씨 탓도 있지만 체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라 속도가 붙지 않는다.
계속되는 봉우리를 넘어야 했으므로 육체적/정신적으로도 좋지 않은 상태였으나 정신력과  긍정적인 사고로 버티면서 발걸음을 내딛을 수 밖에 없었고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이 봉우리만 넘어면 철탑이 보일 것이라 믿고 올라 서 보지만 또다시 봉우리가 나타나길 몇차례 반복 하자 지친 몸은 등로에 털썩 주저 앉게 하였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 손으로 잡아 보니 달아오른 발바닥의 열기는 화상을 일으킬 정도로 뜨겁다.
한차례의 숨고르기 후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서 내림길을 하니 철탑 사이로 난 등로를 따라 완만한 오름후 오미자를 지탱하기 위한 파이프 통로를 지나 차갓재에 도착하여 다시 한번 지리여장군과 진한 포옹을 하는 증명사진을 박고 숨고르기를 한다.
숨고르기후 우측으로 내림길을 따라 안생골에 있는 산장으로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시원한 맥주와 수박을 먹으며 알탕을 즐기고 난 후 미리 준비된 숯불 및 돌판에 구인 삼겹살을 먹으며 이틀동안 빠진 몸무게를 채우고 산행동안 무탈함을 감사하며 하산주를 즐기면서 선후배간의 우애를 돈독히 다진다. 
집 나오면 견고생이라 하지만 자연에 묻혀 즐긴 3일동안의 야생은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는데 충분하였고 대간길의 중앙점에서 앞으로 가야 할 대간길을 열씨미 밟을 것이라 다짐해 본다.
3일동안의 야생을 무사히 마친 선후배님들께 경하드리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에 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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